제법 손이 시린 10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다양한 감성이 무대를 달궜다. 고요한 음색과 활기찬 열정이 한데 어우러져 관중들과 소통했다. 10월 26일과 27일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에서는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관하는 ‘2024 아시아송 페스티벌’(26일)과 ‘문화잇지오(26, 27일)’가 열렸다. ‘아시아송 페스티벌’과 ‘문화잇지오’는 한국 및 세계의 다양한 아티스트가 한자리에 모여 음악과 문화로 함께 소통하는 축제다.
특히 올해 20주년을 맞는 ‘아시아송 페스티벌’은 최초로 개최된 아시아 음악 교류를 위한 뮤직 페스티벌로 그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제에서 글로벌 음악축제로 거듭났다. 또 ‘문화잇지오’는 매년 2개의 대상국을 선정해 그 나라의 다채로운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게 되어 있다. 몇년 전부터 ‘아시아송 페스티벌’과 ‘문화잇지오’는 함께 개최해 음악 만이 아닌 다양한 음식과 전통공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대국 문화를 더 이해하고자 한다.
20주년이라니, 그런 긴 호흡을 꾸준히 이어왔다는 사실에 감동이 배가 되는듯 했다. 케이팝과 함께 아시아팝의 역사를 보듯 지난 20주년 영상을 보며 뜬금없이 결혼식장에서 느끼는 뭉클함이 피어올랐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멀리서라도 구경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미 전석이 매진돼 그 열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붐업 공연에 이어 MC를 맡은 프로미스나인의 새롬과 에잇턴(8TURN)의 재윤이 본격적인 행사의 문을 열었다.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필리핀, 자메이카 총 7개국의 아티스트가 음악을 들려줬다. 한국 아티스트로는 프로미스나인((fromis_9)과 큐더블유이알(QWER), 바밍타이거, 에잇턴이 열정적으로 공연을 펼쳤다. 또 자메이카의 자릴과 인도네시아의 아프간. 태국의 윔, 베트남의 마망, 필리핀의 다이오넬라, 일본의 토미오카 아이가 각각 개성적인 음악을 표현했다. 이들은 함께 콜라보 공연을 하며 양 국가와 서로의 우정과 다졌다.
놀라운 건, 대다수 관객의 태도였다. 이번 ‘아시아송 페스티벌’은 그 취지처럼 관객들도 포용적이었다. 어쩌면 처음 만났을 뮤지션의 공연도 진지하게 관람하고 칭찬하며 함께 응원했다. 필리핀 가수 다이오넬라가 한국어로 “소리 질러~” 라고 외치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고 일본의 토미오카 아이에게 “가와이이(귀엽다)”라고 일본어로 말해주기도 하며 서로 소통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유튜브에서 생방송으로 방영이 됐다. 더욱이 영상에서는 한국어로 가사를 번역해줘 이해를 도왔다. 유튜브 댓글에는 타국의 아티스트를 향해 감흥이 넘친다거나 보컬과 연주와 노래가 좋다는 등 칭찬들이 속속 올라왔다. 간간히 외국어도 있어 그 열기를 더욱 실감했다. 마지막은 다 같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아시아 음악이 울렸을까. 앞서 영상을 보며 결혼식장을 떠올린 건, 단지 영상을 틀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시아송 페스티벌’ 탄생부터 청년기까지 소중한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벅찬 감격 때문이었다. 또 굳이 그렇게 비유한다면 개인적으로 ‘아시아송 페스티벌’의 회갑 영상까지 보고 싶다.
■ ‘문화잇지오’로 만난 자메이카와 필리핀
‘아시아송 페스티벌’과 함께 ‘문화잇지오’가 열렸다. ‘문화잇지오’는 해외 각국의 공연과 전시, 음식, 전통의상 등 고유한 문화를 국내에서 직접 생생하게 즐기는 오감만족형 세계 문화 체험 축제다. ‘2024 문화잇지오’의 주제국은 필리핀과 자메이카였다. 우리나라와 올해 75주년 수교를 맞는 필리핀과 평소 가보고 싶었던 자메이카여서 한층 기대감이 컸다. 작년 행사에서 아랍에미리트와 인도를 강렬하게 만났던 딸은 진즉부터 이번 행사를 기다려왔다.
‘문화잇지오’ 리플릿은 여권으로 꾸며져 두 나라의 입국 심사 도장을 찍게 돼 있었다. 레게와 우사인 볼트가 떠오르는 나라 자메이카의 입국 도장을 먼저 찍었다. 순간 13,400km를 훌쩍 뛰어 한강 옆 여의도가 아닌 카리브해 섬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레게가 들리는 듯 유쾌해졌다.
“저 무대에서 뭘 하려고 하지? 레게 음악인가?”
“밥 말리가 생각나는걸.”
행사장을 지나가던 부부가 소곤거렸다.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커피를 한잔 마신 아이는 땋은 머리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에 색색의 자메이카 분위기가 피어났다. 아이 표정을 보니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도 망설이지 않고 대기 줄에 섰다. 머리를 땋고 자메이카의 무알콜 칵테일도 시음해봤다. 아구아데 자메이카(히비스커스)라는 꽃으로 만든 재료를 섞었단다. 가보지 못했지만 그곳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필리핀의 입국 도장을 받는 곳은 환승 게이트로 꾸며 실제 공항에 온 느낌을 선사했다. 필리핀은 두 번을 가 봤지만, 문화와 음악을 느끼는 이번 행사에서 만난 필리핀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기처럼 시파치기를 차고 티니클링 대나무 댄스를 하며 흥겨워했다. 한 부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안장 축제 가면을 만들고 전통의상을 체험했다. 레게머리를 한 딸은 필리핀 의상을 입고 포토존에 섰다. 자메이카와 필리핀이 함께 만나 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사진을 찍어주다가 흥겨운 리듬이 들리자 나도 몰래 어깨가 들썩여졌다.
옆 부스에는 ‘사리-사리 스토어’라고 불리는 포토존이 꾸며 있었다. 안내자는 “사리사리는 동네 편의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포토존을 본 러시아에서 왔다는 여성 일행이 반갑게 인증샷을 찍었다. 해외에서 또 다른 나라의 문화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한국에 온 지 2주 됐다는 러시아 여성들은 “신기하다”라며 “머리 땋는 체험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공연과 문화를 좀 더 친근하게 즐길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공연 전날 네트워킹 나잇이 마련돼 관계자와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났다. 이를 통해 행사 취지를 들어보고 그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티스트들에게 한국에 관해 묻고 각자의 음악과 취미를 들어봤다.
“저흰 한국방문이 처음이에요. 이번 기회를 통해 자메이카에 대해 다양한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자메이카 공연팀 ’댄스 익스프레션즈‘의 일원인 크리스티나가 발랄하게 말했다. 자메이카의 어떤 문화를 추천하냐고 묻자, 서슴지 않고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따라 나도 인생 40년 만에 레게머리를 땋는 체험을 해봤다. 내일 무대가 긴장되지 않냐고 묻자, 아티스트들은 “긴장은 안 될 수가 없다. 그래도 설레는 게 앞선다”고 답했다.
아시아송 페스티벌은 저녁 10시경 끝이 났다. 나와 함께 버스를 탄 중학생들의 흥겨운 대화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대전에서 올라왔는데 행사가 무척 좋았단다. 장시간 피곤했을 법한데 그들의 표정은 무척 해맑았다. 이들의 기억 속에는 오늘의 시간이 두고두고 남으리라. 이날 현장에서 지켜본 관객과 유튜브 생중계를 시청한 시청자 모두 마찬가지일 테다
간만에 들리는 소식은 얼마 전인 9월 초 ‘2023 문화잇지오‘의 두 개의 국가 중 하나로 선정된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음악예술재단과 KOFICE(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가 문화교류 활성화 MOU를 맺었단다. 왠지 그 후속 과정을 본 듯해 뿌듯하다.
가장 좋은 건 현지에서 직접 문화를 접하는 것일 테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럴 수 없는 일. 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 나라의 문화를 즐겁게 만나는 방법. 바로 ‘문화잇지오’와 ‘아시아송 페스티벌’이 아닐까. 내년은 또 어떤 나라로의 여행이 펼쳐질까. 지금부터 벌써 내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