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자정부 누리집 로고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2024 정부 업무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정부정책 사실은 이렇습니다

콘텐츠 영역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40) 이소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2004년, 작곡 이승환/작사 이소라) 실연을 당했을 때 대체로 남자는 술을 퍼마시며 떠난 그녀를 저주한다. 여자는 좀 다르다. 뒤돌아서 화장을 고치거나 헤어 스타일을 바꾼다. 여자가 머리를 자르는 심리는 극복 의례다.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바닥에 수북이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그와의 추억이자 미련이다. 그래, 난 이제 새롭게 태어날 거야.실연의 상처 따위는 이 순간 잊어버릴 거야. 남자는 술을 마시며 죽을 만큼 괴로워하는데, 여자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발랄하게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날 참이다. 남자들은 이별의 상처를 자기학대로 풀지만, 여자는 자기 변신으로 극복한다. 대중가요에 그런 가사가 적지 않다.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1987년)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립스틱 짙게 바르고/아침에 피었다가/저녁에 지고 마는/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20년 후 다비치가 부른 같은 제목의 노래다.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을래/다시는 바보 같은 짓 절대 안 할 거야/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긴 머리를 자르고/니가 준 상처를 지우고 이별은 남자가 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랑에도 유효기한이, 유통기간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이소라도 머리를 잘랐다. 그의 대표곡 바람이 분다는 사랑을 잃고 나서 처절한 고독과 마주하는 노래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부는데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고 했다. 사랑이 떠나자 풍경마저도 추억마저도 주인을 잃었다. 그런데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른다. 달라져 있는 건 나 혼자뿐이다. 그대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사랑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 한바탕 비극이었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이었다. 이소라는 머리는 잘랐지만 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다가올 사랑을 찾아 흘러간 사랑을 극복하려 하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실연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는 의지만을 붙들고 있다. 너는 날 사랑하지 않았고, 너는 내가 아님을 인정한다. 바람이 불고 눈물은 나지만 여름 끝에 선 너의 차가웠던 뒷모습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깊고 서늘한 실연의 문장들이다. 가사에는 눈물이 흐를 뿐 원망의 언어는 없다. 돌아오라고 애원하지도 않는다. 나 죽겠다고 협박도 하지 않는다. 청승도 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실연은 매우 품위와 절도가 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그 유명한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처럼. 이소라의 노래에는 유독 실연과 이별이 많다. 이별을 앞두거나 막 겪었거나 혹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아파하는 여성들이다. 이소라는 사랑의 슬픔을 과장되지 않게, 듣는 이들이 각자의 이별의 정한에 푹 빠질 수 있는 섬세하고 담담하고 정갈한 언어로 빚어낸다. 그는 빼어난 작사가다. 작곡은 하지 않지만 자신의 노랫말을 직접 쓰고 프로듀싱하는 가수다. 노랫말은 곧 자신의 얘기라고 한다. 바람이 분다 역시 내 이야기라고 방송에서 말했다. 지독한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쓸 수 없는 노랫말이다. 육화한 언어다. 정체성이 투영된 그의 노랫말에는 특히 여성들이 공감한다. 카카오뮤직과 문학과지성사가 2014년 한글날을 맞아 2000년 이후 발표된 노래를 대상으로 시인 14명에게 아름다운 노랫말 설문조사를 했다. 바람이 분다는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와 함께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김광진 편지, 브로콜리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델리스파이스 고백, 김윤아 봄날은 간다, 루시드폴 물이 되는 꿈 등이 베스트7에 들었다. 바람이 분다는 2004년 발매한 6집 앨범 눈썹달에 수록됐다. 작곡은 필명 The Story로 더 알려진 서울대 작곡과 출신의 이승환이다(가수 이승환과 다른 인물). 앨범의 타이틀곡은 이 노래가 아니라 이제 그만이다. 바람이 분다가 너무 처연하고 우울하다는 이유였다. 이 음반은 그해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한 명반이다. 지난해 CD 앨범이 품격 있는 LP판으로 3000장 한정 발매되자마자 매진됐다. 노래는 처음에는 대중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서 사회자이자 경연자로 나온 이소라가 첫 방송 첫 곡으로 부르면서 엄청난 역주행이 시작돼 이제는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바람이 분다가 수록된 2004년 이소라 6집 앨범 눈썹달. CD 겉면에 초승달 하나만 달랑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이소라를 두고 대체 불가이며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그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독보적 아티스트임에 틀림없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색, 위력적 성량과 섬세한 표현력, 독특한 무대 매너, 은둔적 생활과 기행, 음악에 대해 지독할 정도의 고집과 완벽성. 그는 비성을 쓰는 대표적 가수다. 특유의 콧소리가 묻어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단박에 귀를 잡아끈다. 비성이면서도 울림통에서 나오는 성량이 매우 뛰어나다. 기교를 최대한 절제하며 호흡을 활용해 소리의 공명 그 자체에 집중하며 감정은 풍부한 음색으로 표현한다. 성대가 많이 열린 상태에서 소리와 호흡이 같이 나오게 되면 가성처럼 들리는데 이게 이소라 특유의 음색이다. 모창이 어려운 가수다. 그는 목소리 하나만으로 노래와 무대를 완전히 지배한다. 감정표현과 감정이입에 절대적 강점을 갖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이소라의 유니크한 목소리에 대해 지적 섬세함과 파괴적 열망이 뒤섞인이라고 했다. 이소라는 앉아서 노래한다. 눈도 감는다. 멘트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앙코르도 받지 않을 때가 많다. 그의 콘서트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 항목이다. 그가 의자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노래를 시작하면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한다. 떼창, 환호, 기립박수 등을 들을 수 없다. 지난해 12월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소라에게는 4년 만의 공연이었다. 수도사 같은 검은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미동 없이 무려 10번째 노래를 부른 후에야 처음 입을 열었다. 이소랍니다. 이제 조용히 있지 않으셔도 돼요. 숨 막힐 것 같았죠? 그는 KBS TV 심야 음악 프로그램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1996년부터 5년 5개월이나 진행했고 두터운 팬덤을 갖고 있지만 은둔자다. 몇 달이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두문불출이 몇 년씩 갈 때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대를 뛰쳐나가기도 해 연출자는 늘 긴장한다. 지난해 12월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의자에 앉아 노래하는 이소라. 그는 앉아서 노래하는 가수다. (사진=에르타알레 엔터테인먼트) 1969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인천대학교 재학 시절 재즈 아카펠라 그룹 낯선 사람들에서 노래하다 가수 김현철을 만났다. 그와 듀엣으로 부른 그대 안의 블루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대중음악계에 홀연히 나타났다. 1995년 솔로로 데뷔하며 발표한 정규 1집 난 행복해가 100만 장 이상 팔리는 기록을 세웠고, 다음 해 2집도 80만 장가량 나가며 검증된 최고 레벨의 여성 보컬로 각인됐다. 대표곡도 참 많다. 난 행복해, 기억해 줘, 제발, 처음 느낌 그대로, 너무 다른 널 보면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이제 그만, 청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 올해 50대 중반에 들어선 그는 여전히 결혼 생각은 없다고 한다. 한때 삭발했을 때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스스로 머리를 깎다가 잘못되자 아예 싹 밀어버렸다고 한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2024.02.29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칼럼니스트별 보기

기고/칼럼 검색

검색폼
~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