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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인의 관심 속에 막을 올린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 미술행사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국제적 미술 행사이다.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작가들이 자신의 예술적 특성을 선보이며 예술가로서 입지를 세울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이렇듯 세계인과 소통을 시도하는 국제적 행사가 있기 전에는 어떤 형식으로 화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였을까?
예술의 발전을 이끄는 제도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지 실행된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미술계에서 화가들의 경쟁을 이끌고, 경쟁을 통해 유명화가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여러 방법의 하나가 전람회에서 입상하는 것이다. 미술사를 보면 전람회 입상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때가 있었다.
유럽미술의 중심이었으며, 수많은 작가를 배출한 프랑스 ‘살롱’전은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무려 200년간 프랑스 미술계를 이끈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전람회였다.
살롱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루브르 궁에서 <카레 살롱>이라는 이름으로 첫 미술전시가 열리면서 처음 등장했다.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서 개최한 ‘살롱’은 생존 작가들이 공들여 제작한 역작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경쟁의 장이었다.
특정계층의 전유물처럼 여기던 미술작품을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대중적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컸다. 살롱은 미술평론가, 소장가, 기자 등 미술관련 전문가들의 깊은 관심 속에서 명실상부 프랑스 미술전람회의 상징이 되었다.
특히 ‘살롱’을 개최하고 작품을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취향과 기준은 당시 프랑스미술의 화풍을 결정지을 정도였다. 살롱에서 입상한 작가들은 화단에서 입지는 물론 대중적 인지도까지 높아지며 유명화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살롱에서 입상은 당시 화가들에게는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절대 기준이었다. 1835년 당시 미래를 촉망받던 그로가 살롱의 낙선으로 절망해 자살할 정도로 프랑스 화단에서 살롱의 위세는 대단했다.
최초의 살롱
제1회 ‘살롱’전은 1667년 콜베르가 시작했다. 처음 비정기적으로 열리다가 1675년까지와 1748년에서 1791년까지 2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개최(그 사이에는 1년에 한 번)하여 동시대화가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토마 퀴튀르, 장 레옹 제롬, 폴 보드리, 레옹 보나, 알렉상드르 카바넬,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등 아카데미화풍을 이끌었던 화가들은 모두 <살롱>을 통해 스타반열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살롱은 전시형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작가들이 전시할 때 만드는 팸플릿 형태의 카탈로그가 그때 처음 등장했다는 점에서 근대미술전시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유료였던 팸플릿 홍보효과는 탁월했다. 다른 전시보다 4배가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살롱을 통해 수많은 작품이(1787년에 2만 2천점의 작품이 팔림)팔리는 등 당시 살롱의 인기는 최고였다.
그렇다면, 살롱에는 얼마나 많은 화가가 참여했을까? 1863년 살롱의 인기가 극에 달했을 때 출품작은 5,000점에 이르렀다. 출품작이 많은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출품작 중 3000여 점은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살롱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사위원 수도 늘었다.(처음 8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나고, 출품작이 급증했던 때는 더 많은 심사위원이 참여함)
그러나 적은 인원으로 며칠 만에 수 천점을 심사하기는 쉽지 않았다. 심사시간에 쫓기다 보니 섬세하게 작품을 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우수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의 눈에 띄지 않아 낙선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심사과정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화가에게는 1년 가까이 열정을 다해 준비한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은 가혹한 일이다.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심사위원이 '거절(refus)'의 의미인 ‘R'을 작품에 표시할 때였다. 이 표시를 받은 작가는 작품을 수정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수정작품이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일부 작가들이 생각해낸 방법이 개막직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시간에 쫓겨 심사하게 되는 허점을 이용해 일부러 <살롱>전 개막까지 기다렸다가 작품을 가져오는 편법을 썼다. 가능한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러한 꼼수는 규정이 엄격해지면서 사라졌지만, 많은 작품을 심사하는 방법 자체가 개선되지는 않았다.
살롱 심사장면 재현그림 |
살롱이 배출한 스타화가, 살롱에서 외면당한 화가
살롱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화가는 누구일까? 고전주의를 이끌었던 다비드와 앵그르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살롱전이 최대 수혜자에 해당하는 화가이다. 또한, 살롱 화풍이 변하는 격변의 순간을 경험한 화가이기도 하다.
고전주의 화풍을 유행시키며 화가로서 입지를 세웠다. 이들의 고전주의 화풍에 도전장을 낸 것이 낭만주의 화가들이다.
낭만주의의 대표화가 들라크루아는 앵그르와 맞수로서 프랑스 화단에서 주목받으며, 고전주의 화풍에 치중했던 살롱의 성격을 낭만주의 화풍으로 바꿔놓은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1824-1834년대는 앵그르를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와 들라크루아로 대변되는 낭만주의가 강렬하게 대치한 시기임) 살롱에서 어떤 화가의 어떤 화풍이 최고상인 ‘로마상’을 획득하느냐에 따라 프랑스화단의 흐름이 좌우되었다.
살롱에서 입상한 화가는 작품을 판매하거나 주문제작을 통해 생활할 수 있었지만, 낙선자는 뚜렷한 판로가 없고, 주문제작도 들어오지 않아 생계에 곤란을 겪었다. 생활의 궁핍보다 더욱 낙선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그림이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일이었다.
낙선작은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그림’으로 취급하는 여론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낙선자 중에는 살롱에 입상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살롱형식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있었다. 또한, 자신의 화풍을 고집하며 살롱에 출품하는 것을 거부하는 화가들도 생겨났다.
살롱에 입상하지 못했다고 영원히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롱에 낙선했지만 성공한 화가들도 많다. 미술사에 남는 화가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상주의에 속한 화가들이다. 인상주의 화가 중 마네와 모네도 살롱에 입상하며 출발은 좋았지만, 이내 살롱에서 외면당하는 화가가 되었다. 이유는 살롱이 추구하는 화풍과 너무 동떨어진 화풍 때문이었다. 아카데미화풍을 벗어나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꾀하는 화가들의 작품은 살롱에게 외면당했다.
낙선자 전람회
나폴레옹 3세 때인 1863년, 살롱 낙선자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진정 살롱이 공정한지 의문이 제기되면서 선정 작품과 낙선 작품사이의 심사기준을 대중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낙선자들의 그림만을 모아 따로 전시하는 ‘낙선자 전람회’가 열렸다.
‘낙선자 전람회’가 몰고 온 파급은 컸다. ‘살롱’ 입상작들의 고전주의 화풍에 질린 관람객들이 점점 낙선 화가들의 그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어떤 그림이 왜 떨어졌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칭찬보다 야유와 비난을 하기 위해 온 관람객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살롱에 버금가는 관심을 끌었다.
예컨대 살롱전의 거장 카바넬이 ‘살롱’에 <비너스 탄생>이란 작품을 출품해 심사위원단의 극찬을 받는 동안 ‘살롱’과 같은 샹젤리제 거리에 열린 ‘낙선자 전람회’에 관객이 몰려갔다. 카미유 피사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에두아르 마네 등이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특히 미술사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마네의 1863년 작 <풀밭 위에 점심>이 ‘낙선자 전람회’에 전시되어 연일 화제를 끄는 바람에 ‘살롱’의 관심과 인기가 퇴색했다.
좌: ‘살롱’에서 심사위원들에게 극찬을 받은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 탄생> 1863년 / 우: ‘낙선자 전람회’에서 야유와 비난의 대상으로 관객의 시선을 모은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1863년 (당시에는 <목욕>으로 불림) |
‘살롱’의 인기와 권위, 위상이 예전과 달라졌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자 정부는 살롱의 쇠퇴를 막기 위해 1880년부터 살롱에서 손을 뗐다. 대신 미술가들에게 전권을 주어 작품선정 기준을 다양화하는 등 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살롱’보다 새로운 형식의 전시회가 생겨나면서 점차 미술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1884년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화가들이 결성한 단체인 ‘앙데팡당(독립미술가협회)’의 창설이 대표적이다. ‘앙데팡당’은 ‘살롱’과 차별화를 위해 심사위원단과 수상제도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궁극에 200여 년간 프랑스 화단을 좌지우지했던 살롱의 쇠퇴는 프랑스 화단의 몰락이 아닌 프랑스가 유럽미술의 중심으로 더욱 굳건한 힘을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출발이 되었다.
*참고문헌 및 추천도서 : 나데주 라네리 다장지음, 이주영옮김『아틀리에의 비밀』아트북스. 2007.
<덤>
살롱은 일본과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경우 1907년 개최한 ‘문부성미술전람회’(제국미술전람회(1919-1934)-신문부성미술전람회(1937)-일본미술전람회(1946)로 변화)는 프랑스 관전을 모방한 것이었다.
1982년부터 명칭이 바뀌어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전신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국전)’ 역시 같은 맥락의 공모전으로 30여 년간 우리나라 미술계를 이끌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국전)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미술전람회(약칭:선전)였다.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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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뉴스 6·25전쟁 참전 고 티탈렙타 네덜란드 용사 유해 봉환 6·25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지킨 유엔 참전용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다. 국가보훈부는 26일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네덜란드 참전용사의 유해 봉환식을 오는 29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A)에서 거행한다고 밝혔다.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는 1953년 4월 3일 네덜란드군 반호이츠 부대 소속 이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1954년 4월 23일까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고인은 21살의 나이에 자원해 6·25전쟁 참전을 결심했고 참전 일주일만에 오른쪽 엉덩이와 허벅지에 부상을 입었으나 다시 전장으로 복귀했다. 정전 하루 전날인 1953년 7월 26일 전개된 묵곡리 전투(340고지 전투)에서 여러 명의 전우를 잃은 아픔도 겪었다. 그는 6·25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1984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정부 훈장을 받았고, 은퇴 후에는 반호이츠 부대 역사박물관에서 20년간 봉사하며 네덜란드군의 6·25전쟁 참전의 역사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의 배우자 마리아나 티탈렙타(74세)씨는 남편이 생전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기를 희망했고 남편의 유언대로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게 되어 기쁘다고 유해 봉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유해 봉환식은 29일 오후 4시 40분경 유해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5시 30분부터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모시겠습니다라는 주제로 거행한다. 유해 봉환식에는 강정애 보훈부 장관,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 대사, 고인의 배우자, 손녀 등이 참석해 국방부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고인의 유골함을 향해 예를 표하고 추모사 후 봉송 차량까지 모시는 간결한 의식으로 진행한다. 추모사는 강정애 장관과 페이터 반 더 플리트 대사, 고인의 배우자가 차례로 낭독할 예정이다. 봉환식을 마치면 유해는 5월 1일까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되며, 안장식은 유족과의 협의에 따라 2일 오후 2시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주관으로 거행된다. 가평전투 73주년을 맞아 방한한 영연방 4개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23일 오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전우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국가보훈부 제공)2024.4.23.(ⓒ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편,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와 생전에 인연이 깊은 페트뤼스 호르메스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협회장과 반호이츠 부대원들도 방한해 일정을 함께한다. 유족을 포함한 방한단은 29일 입국한 뒤 유해 봉환식과 횡성전투기념식, 안장식 등에 참석한 후 다음 달 3일 출국할 예정이다. 강정애 보훈부 장관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고 페르디난트 티탈렙타 참전용사님의 유언에 따라 대한민국 부산에서 영예롭게 잠드실 수 있도록 예우를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2015년 5월 레몽 베르나르 프랑스 참전용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26명이 사후 안장돼 있으며, 그중 네덜란드 참전용사는 5명이다. 문의: 국가보훈부 국제협력과(044-202-5912)
- 카드뉴스 사업장 이전으로 퇴사하게 되면 실업급여는 못 받나요? 자발적 퇴사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 대해서 준비해왔습니다! 우리 모두 사례를 통해 고드래곤과 함께 알아볼까요? Ⅴ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기본 조건 실업급여를 수급하기 위해서는 다음 4가지 조건에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기여기간(180일 이상) 비자발적 퇴사 실업상태 적극적 구직활동 ※ 실업급여란?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 소정의 급여를 지급해 생계 안정 및 재취업의 기회를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자발적 퇴사인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사유들이 있는데요!(예외사유) 통근이 곤란한 경우, 2개월 이상 임금체불 직장내 괴롭힘 등 이번엔 그중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 대해 사례로 알아볼까요? [사례1] 회사 이전으로 출퇴근이 멀어져서 퇴사하게 됐는데요? 이런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나요? - 네! 받을 수 있습니다! 사업장의 이전 또는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으로의 전근 등에 의한 사유로 퇴사 시 통상의 교통수단으로 통근 왕복 시간이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됩니다! [사례 2] 결혼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할 예정인데, 이런 경우에도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되나요? - 네! 해당됩니다! 배우자 또는 부양할 친족과의 동거를 위한 이사로 퇴사를 하게 되는 경우, 실업급여 대상에 해당됩니다. 다만, 위 경우를 제외한 사유로 이사하게 되어 퇴사하는 경우에는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돼요! 마지막으로 통근이 곤란한 사유로 인정되는 사례를 정리해볼까요? Ⅴ 사업장의 이전 Ⅴ 다른 지역 사업장으로의 전근 Ⅴ 배우자 또는 부양 가족과의 동거를 위한 이전 Ⅴ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통근이 곤란한 경우 위의 사유 중 한 가지에 해당되며, 통상 교통수단으로 왕복 3시간 이상 소요된다면 실업급여 수급 가능! 당연히 기여 기간, 실업상태, 구직활동 등의 요건도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 건강 심방세동 예방 관리 8대 생활 수칙 심장의 박동이나 리듬이 고르지 않은 것을 부정맥이라고 합니다. 심방세동은 부정맥의 한 종류로 심장 박동이 지속해서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방세동이 생기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며, 심박이 빨라지므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걸을 때 숨이 차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붓거나 어지럽고 피로한 증상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전혀 증상 없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주로 어르신에게서 관찰되지만, 드물게 50세 이전의 중장년층에게서도 발병합니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뇌경색(중풍) 예방입니다. 맥박을 만져 보거나 혈압을 측정할 때 이상 상태가 관찰되며 스마트워치로 발견할 수 있지만 심방세동은 심전도 검사를 해야만 확실한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방세동 예방 관리 8대 생활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두근거림이 있으면 항상 맥박을 재거나 심전도 검사를 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 손가락을 가볍게 손목에 올려 맥박이 불규칙하지는 않은지 천천히 확인합니다. 자동 혈압계나 스마트워치를 이용하여 맥박수나 심전도를 측정합니다.두근거림이 지속되면 가까운 병원에 방문하여 심전도를 측정합니다. 2. 과음과 폭음을 삼갑니다. 술자리는 되도록 피합니다. 술은 하루에 3잔 이상 마시지 않습니다. 술을 마실 때 폭탄주와 원샷은 피합니다. - 폭탄주는 체내 알코올 흡수율과 전체 음주량을 높이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원샷은 혈중알코올농도를 급상승시켜 폭음으로 이어질 확률을 높이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3.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합니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면 요가나 본인에게 맞는 유산소 운동을 하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자기 몸을 스스로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행동 제어 요법이 도움이 됩니다. - 과도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심방세동을 유발하거나 심방세동 재발 빈도를 높입니다.- 생체 자기 제어(바이오피드백) 방법으로 깊이 호흡하거나 인위적으로 근육을 이완한다거나, 자기 체면, 명상 요법이 해당합니다. 4.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과 같은 기저질환을 잘 관리합니다. 혈압을 자주 측정하여 목표 혈압이 유지되는지 확인합니다. - 고혈압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혈압약을 먹기 전과 자기 전에 측정한 혈압이 중요합니다. 본인의 목표 혈압이 얼마인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혈압약은 매일 같은 시간에 먹습니다. - 약을 깜박 잊는 경우 생각나는 즉시 먹어야 합니다. 본인의 당화혈색소를 확인합니다. - 심장, 혈관에 가장 좋은 수치는 일반적으로 6.5% 이내입니다.- 본인의 당화혈색소가 잘 조절되고 있는지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합니다. 5. 수면 무호흡을 잘 관리합니다. 수면 무호흡과 심방세동 발생을 줄이려면 적절한 체중 유지가 중요합니다. - 자신의 적절한 체중[(키(㎝)-100)0.9]을 확인합니다. 잠을 충분히 자도 낮에 계속 피곤하고 나른하다면 수면 검사를 받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 이후 음식물 섭취를 피하고,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6. 금연을 합니다. 흡연은 심방세동의 위험 인자이므로 금연합니다. 금연을 위한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니도록 합니다. - 금연, 체중 감량, 금주, 운동 등의 생활 습관은 심방세동 예방과 심혈관 건강을 증진합니다. 금연이 어렵다면 금연 교실, 금연 약물 등과 관련해 담당 의사와 상의합니다. 7. 비만을 관리합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합니다. - 식습관을 파악하기 위해 식사 일기를 적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짠 음식, 단 음식,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물을 충분히 마시는 습관을 기릅니다. 매일 20분 이상 걷기 운동을 합니다. - 심한 무릎관절염과 같이 걷기 운동이 무리가 될 때는 담당 의사 판단에 따라 다른 운동으로 대체합니다. 하루 7~8시간의 충분한 수면 시간을 지킵니다. 8. 심방세동으로 진단받으면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받습니다. 심방세동을 치료하지 않으면 뇌졸중, 심혈관질환 등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심방세동을 치료하려고 약물치료를 받을 때 약물 순응도와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 심방세동을 치료하지 않으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발생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자료=질병관리청·대한의학회
- 사진 산림청, 전남 구례 사방사업지 산사태 예방 대응 태세 점검 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여름철 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여름철 산사태 예방을 위해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남성현 산림청장이 전남 구례군 산사태취약지역 사방사업지에서 주민안전을 위해 견실하고 철저한 시공을 당부하고 있다.
- 국민이 말하는 정책 보건소 스마트워치로 건강 관리 시작합니다! 스마트워치가 생겼습니다. 팔목에 착 감기는 착용감이 무척 편안합니다. 시계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전화, 문자, 카톡 알림도 신속하게 들어옵니다. 전화 걸기와 받기까지 가능합니다. 이뿐일까요. 심박수와 스트레스 측정 또한 간편하게 체크할 수 있습니다. 이 스마트워치의 최대 기능이라면 개인의 활동 및 운동 데이터가 수집, 전송된다는 것입니다. 유명 브랜드의 스마트워치 못지않은 성능과 디자인으로 제 일상의 건강 관리를 돕고 있습니다. 성능과 디자인이 모두 훌륭한 보건소 스마트워치. 국민의 건강을 위한 워치형 스마트밴드(스마트워치)를 지난 4월 12일 지자체 보건소에서 받아왔습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의 일환인데요. 모바일 헬스케어란 ICT를 활용한 공공형 건강 관리 서비스로 6개월간 진행하는 장기 프로그램입니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채움건강 앱과 활동량계(스마트워치)를 통해 기록된 개인별 생활습관을 모니터링해 맞춤형 건강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건소 채움건강 앱. 매년 초 각 지자체 보건소에서는 모바일 헬스케어 참여자를 모집해 6개월간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저는 지난 2월 신청해 4월 12일 초기검진을 실시했습니다. 검진에서는 혈압, 공복혈당, HDL, 중성지방, 허리둘레 등을 체크했습니다. 최근 혈압이 높았던 저는 혈압 대상자에 해당돼 모바일 헬스케어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1시간 이상 교육 및 상담이 이뤄졌습니다. 일단 진료실에서 의사와 상담을 했습니다.혈압이 높은 이유는 체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체중을 줄이면 혈압도 자연히 내려간다고 말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지속 가능한 건강 관리를 위해 한 달에 1.2kg 감량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너무 무리해서 빼지도 말고, 절대 굶지 않기를 권유하셨습니다. 3개월 뒤 중간점검이 있을 시 3.6kg 정도를 감량하면 아주 건강한 다이어트가 될 거라말씀하셨습니다. 보건소에서 제공한 계절별 건강 식단표. 다음으로는 식단 관리를 위해 영양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수치를 보고 필요한 식단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루 섭취 칼로리는 2000kcal로 설정해 주셨습니다. 그림처럼 아침, 점심, 저녁 정확한 식단표도 보여줬습니다. 한 끼마다 채소 두 가지 이상을 꼭 섭취할 것, 잡곡밥 먹기, 먹는 순서까지도 세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모르고도 못했고,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식단 관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채움건강 앱을 통해 매일 제가 먹는 식사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기에 여러 이벤트를 통해 꾸준히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하셨습니다. 보건소에서 나눠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 마지막으로 운동관리사를 만났습니다. 일상 속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퇴근 후에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를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7000보 이상 걸을 것을강조했습니다. 개인 운동 역시 운동일기를 적으며 매일매일 꾸준히 실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활동은 스마트워치와 채움건강 앱을 통해 보건소 분야별 전문가에서 전달될 예정이며, 만약 변화가 없을 경우 개별 상담이 꾸준히 이뤄질 것입니다. 사실 건강 관리라는 것이 의지 만으로 오래 지속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보건소의 도움으로 6개월간 지속 관리를 통해 천천히 변화를 꾀하고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초기검진, 중간검진, 최종검진으로 저는 6kg 이상을 근 손실 없이 체지방만 빼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초기, 중간, 최종검진 항목. 보건소에서 수령한 스마트워치는 6개월 간 충분히 잘 활용하면 무상으로 증정된다고 했습니다. 6개월 뒤에도 스마트위치를 활용한 건강 관리를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전국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건강 관련 지원사업에 꼭 참여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깐요.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영미 pym1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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