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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정신의 파블로, 파블로, 파블로

[클래식에 빠지다] ⑤ ‘파블로’ 이름을 지닌 화가 피카소와 시인 네루다, 그리고 첼리스트 카잘스

2021.03.12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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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우리 민족의 대표적 저항운동인 삼일절은 문화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미술에서는 나혜석과 이중섭이, 문학에는 이육사, 심훈, 윤동주 등이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 ‘파블로’라는 이름을 가진 3명 또한 인간존중의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에 충실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들 셋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와 평생 망명생활을 하며 조국 칠레에서 억압받는 민중을 대변하고자 했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다.

이와 함께 네루다의 친구이자 그의 사상을 지지하고 함께 파시즘에 대항했던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까지, 이들은 태어난 시기는 다르지만 격동의 시대인 세계대전을 겪었고 모두 같은 해인 1973년에 타계했다.

◆ 게르니카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게르니카’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피카소의 ‘게르니카’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해 초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되기 전 마드리드에서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Guernica)’를 보았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상징적이면서도 예술가로서 정의로움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마드리드 소피아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데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먼저 놀라고 그림이 주는 위압감과 처절한 분위기에 두 번 놀란다.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조용한 마을 게르니카에 나치와 프랑코,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단지 신무기 실험을 목적으로, 장이 서는 휴일에 도시를 향해 융단폭격을 가했다. 아직도 그 때의 참상을 기억하는 피해자들이 남아서 그 당시를 얘기하고 있다.

피카소는 참상 2주 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예술계 유명인사로 나치의 감시를 받았던 피카소에게 나치군인이 “이 그림을 당신이 그린 것이냐”고 물었을 때 피카소는 당당하게 “아니다 .너희들(나치들)이 그린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림의 왼편에는 황소에게 죽은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여인을 그리고 있는데 황소는 미노타우르스나 독재자 프랑코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피카소는 “회화는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저항을 위한 전쟁의 도구”라고 말했다.

한편 게르니카는 다시 공화국체제로 전환하기 전에는 조국으로 그림을 보내지 않겠다는 피카소의 의지에 따라 독재자 프랑코와 피카소 사후인 1981년 뉴욕에서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 시가 내게로 왔다

사진은 지난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파리에서 기자들과 만난 네루다 당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
사진은 지난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파리에서 기자들과 만난 네루다 당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피카소의 친구이자 스페인내전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대 문호 네루다 역시 시를 통해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노래했다.

영화 <일 포스티노>로도 잘 알려진 그는 전쟁을 통해 반 파시즘과 정치적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 평생 많은 비판과 고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철학과 문학에는 거창한 정치적 수사가 아닌 그저 힘없고 약한 민중들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이 되어있다.

몇 해 전 칠레의 산호세 광산이 무너져 지하 700m에 33명의 광부가 매몰되는 대형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사고 후 69일만에 기적적으로 모두 생환했다.

그런데 이때 밝혀진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그들이 삶의 의지를 놓지 않으려고 네루다의 시를 돌려가면서 읽었다는 것이다. 이는 네루다의 시가 칠레인들에게 어떻게 뿌리내려져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벨 문학상수상자인 그는 비단 칠레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호로 사랑 받고 있으며, 그의 저항시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피카소로부터 많은 지지는 물론 유럽을 통해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

한편 피노체트 군부독재를 피해 망명을 준비하던 네루다는 망명 하루 전날 타계했는데, 2015년 11월에 스페인어권 최대 신문 중 하나인 엘 파이스 지는 네루다가 제3자의 개입으로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 첼로의 성자

바르셀로나 여행 중 몬세라트 수도원의 파블로 카잘스 석상에서
바르셀로나 여행 중 몬세라트 수도원의 파블로 카잘스 석상에서(사진=필자)

20세기 또 한 명의 파블로인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 또한 파시즘에 대항해 음악을 무기로 싸우고 있었다.

첼로를 독주악기로 끌어올리고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을 부활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쌓은 카잘스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시골지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는데, 아들이 목수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한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확신과 선견지명으로 우리는 위대한 음악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80년동안 카잘스는 아침에 일어나서 바흐의 프렐류드(Prelude)와 푸가(Fuga)중 한 곡을 피아노로 치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이것을 일종의 의식이자 축복으로 생각했으며, 세계를 재발견하고 자신이 그 세계의 일부분이라는데서 오는 기쁨을 누렸다.

또한 바흐음악에서 생명기적의 깨달음과 인간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을 매일매일 연주하면서 느꼈다고 했는데, 바흐의 음악을 사소한 곳에서도 느껴지는 자연의 기적처럼 대했다. 

아흔이 넘어서도 6시간씩 연습을 하는 그에게 기자가 이유를 묻자 “나는 지금도 매일 발전해가고 있다고”고 대답했다. 실로 음악가로서 존경해마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카잘스는 가장 완벽한 기교란 기교처럼 보이지 않는 기교라고 말했다. 젊고 매너리즘에 빠진 재능 있는 음악가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정곡을 찌르는 충고이다.

이런 대 음악가도 프랑코의 군부독재에 반대해 고국에서의 연주를 거부했고, 외국을 돌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금을 모으고 연설을 하며 파시즘과 맞서 싸웠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했는데, 이는 그의 정의로움과 인간존중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특히 카잘스는 예술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엄성과 자유를 추구했고, 자신의 우선적 임무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해왔다.

예술가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몸소 보여준 카잘스, 그는 훌륭한 인격체로 20세기 초 어느 때보다 많았던 세계적 대학살을 견디게 해준 높은 경지의 예술가였던 것이다.

◆ 정의로움과 아름다움

세 명의 파블로에게 그림과 시, 음악은 단순히 피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도구가 아닌, 철학이자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였다. 또한 그 밑바탕에는 인간존중의 정의로움이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마이클 샌들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최다수의 최대행복인 공리주의적 시각,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각,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 선을 추구하는 행위를 정의의 세가지로 언급했다.

그리고 샌들교수는 마지막을 지지했다. 세 명의 파블로 또한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마지막 정의를 말하지 않았을까? 진정한 아름다움은 정의로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파블로

파블로는 ‘작은’이라는 뜻의 라틴어 Paulus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명의 파블로는 세계예술사의 거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게르니카를 그리고 있는, 저항정신으로 안데스산맥을 넘고 있는, 바흐를 연주하는 파블로의 정신이 소를 그리고 있는 이중섭, 청포도를 쓰고 있는 이육사, 아리랑을 만들고 있는 나운규의 정신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한다.

프랑스 천재문학가인 로베르 브라지약(Robert Brasillach)의 최후를 생각하며 우리도 성찰하는 3월이 되었으면 한다. 

카잘스의 후배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M.Rostropovich)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땅이 척박할수록 포도나무는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그런 환경이 최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한다고.

끝으로 파블로 네루다가 처음으로 외교관 발령을 받았던 미얀마의 미래를 응원하며 그의 명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You can cut all the flowers, but you cannot keep spring from coming. (모든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 파블로 네루다

☞ 추천음반

카잘스의 바흐음반은 지난 3회 <바로크와 바흐>편에서 무반주 첼로소나타를 추천했었다.

이에 이번 회에서는 까딸루냐 민요인 “새의 노래(song of bird)”를 추천한다. 이 곡은 카잘스가 타지에서 항상 앙코르 곡으로 연주하던 곡이었다.

특히 94세에 유엔평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유엔사무총장이 “귀하는 전 생애를 진실과 아름다움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라는 수상사유를 밝히자 총회에서 힘차게 연주했던 곡으로도 유명하다.

솔로 연주곡 외에도 바이올린의 자크티보(Jacques Thibaud)와 피아노의 알프레도 코르토(Alfred Cortot)와 함께한 트리오 앨범도 권한다. 특히 카잘스의 여러 음반이 있지만 1925년~1928년사이의 Naxos 레이블의 아름다운 소품집도 꼭 들어보셨으면 한다.

끝으로 독일 출신의 뮤지컬배우이자 가수인 우테 램퍼(Ute Lemper)가 파블로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인 “Forever”라는 음반도 들어보시길 권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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