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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맛은 까나리 맛이다

[김준의 섬섬옥수] 인천 백령도

2020.08.24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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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까나리잡이는 끝났다. 이제 잘 숙성되길 기다릴 뿐이다. 적어도 1년 반, 18개월은 기다려야 잘 삭혀진 액젓을 만날 수 있다. 백령도 까나리 액젓은 바다가 키우고 정성과 기다림으로 숙성되어 만들어진다.

장촌마을 선창에 있는 예닐곱 개의 까나리 삶는 솥도 아궁이를 닫았다. 까나리를 탐해 들어온 놀래미와 우럭이 빨랫줄에 걸리면 백령바다의 봄철 바다농사가 갈무리 되어 간다. 꽃게와 멸치어장이 시작되는 가을 어기까지 한숨을 돌릴 수 있다.

백령도에는 용기포, 오군포, 장촌포, 중화동포포구, 두무진포구, 사항포, 고봉포 등의 포구가 있다. 이들 포구마다 까나리가 익어가는 통이 있다. 많은 곳은 수백 개가 줄지어 있고, 몇 개라도 꼭 있다.

사항포, 포구에 가득 찬 까나리 액젓 통들.
사항포, 포구에 가득 찬 까나리 액젓 통들.

까나리인가 양미리인가

까나리는 농어목 까나리과 바닷물고기로 연안의 모래에 서식한다. 옹진군 백령도만 아니라 보령시의 외연도, 원산도, 고대도, 군산시 대장도, 장자도 등 섬 주민들이 잡고 있다. 서해만 아니라 동해의 겨울 손님 양미리도 사실은 까나리이다.

진짜 양미리는 까나리와 달리 큰가시고기목 양미리과에 속한다. 서해에서 잡는 까나리는 봄에서 초여름까지 5㎝ 내외의 어린 까나리이며, 동해에서 잡는 겨울철 ‘양미리’는 사실은 20~30㎝ 내외로 큰 까나리이다. 서해에서 잡는 까나리는 액젓이나 멸치처럼 삶거나 생으로 말려 반찬으로 이용한다. 동해안에서 잡은 큰 까나리는 조림이나 구이 등으로 많이 이용한다.

큰가시고기목 양미리는 5㎝ 내외의 작은 어류로 동해와 오호츠크해의 해조류가 많은 바위에 산란을 한다. 양미리와 까나리는 크기가 다르지만 확실한 차이는 등지느러미를 보면 알 수 있다. 까나리는 등 전체에 지느러미가 있지만, 양미리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몸 뒷부분에 부채모양으로 자리해 있다. 까나리는 겨울에서 초봄에 바다 속 모래에 2000에서 6000개 가량의 알을 낳지만, 양미리는 해조류나 암초지대에 30개에서 50여 개의 알을 낳아 붙인다.

백령도 까나리를 탐한 일본

백령도와 초도 등 황해도 까나리잡이는 일제강점기에도 성했다. ‘동아일보(1935.6.9.)’에는 ‘황해도 서해안에서 최고의 까나리 어장은 풍천 초도로 당시 연 생산액이 20여만 원’이라 했다. 백령도 북쪽에 있는 섬이다. 이곳 섬에 사는 5000여 명의 주민의 가장 큰 생계수단은 까나리잡이였다. 하지만 백령도와 초도 일대의 까나리 ‘중요 어장지는 대부분 일본 내지인이 점유해서 섬 주민은 생활이 어려워 인심이 흉흉하다’고 했다.

까나리를 말리는 백령도 어민들의 모습.(사진=옹진군)
까나리를 말리는 백령도 어민들의 모습.(사진=옹진군)

주민들은 ‘허가 기간이 끝나는 어장은 섬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어업조합으로 편입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도 봄에 까나리잡이가 끝나고 여름이 지나면 그물을 바뀌서 멸치잡이를 했었다. 지금 백령도에서도 봄에는 까나리를 잡고 여름에는 멸치를 잡는다.

당시 까나리 어법은 지인망과 선인망이었다. 지인망은 많은 사람이 그물의 양 끝을 백사장으로 끌어 올려 어획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가끔 백령도 사곶해안에서 체험용으로 재현하는 ‘대후리’어법이다. 당시에는 집어등으로 까나리를 유인해 지인망으로 포획한 후 끌어서 잡았다. 선어망은 홀치기라고 하는데 배를 타고 나가서 그물로 가두어 잡는 방법이다.

백령도 까나리 어떻게 잡을까

백령도에는 50여 척의 배가 까나리를 잡는다. 이 중 두무진이 15~16척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용기포 11척이며 화동포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을에서 몇 척씩 까나리를 잡는 배가 있다. 한국전쟁 전에는 백령도 어부들은 조기를 잡고 홍어를 잡아 황해도 진남포나 장산곶에 팔아 식량을 구입했다. 봄 어기가 끝나면 까나리를 잡고, 가을에는 꽃게와 멸치를 잡았다. 이젠 까나리가 백령도를 대표하는 물고기가 되었다.

백령도에서 까나리를 잡는 방법은 안강망과 낭장망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백령도에서는 이 중 낭장망을 많이 이용한다. 지금처럼 쇠로 만든 닻을 쓰기 전에는 돌을 둥글게 짠 망태에 담아 배를 고정시켰다. 이를 ‘고’라 불렀다. 배에 그물을 매달고 바다에 넣는 것을 ‘고 묻는다’고 했다. 배 좌우현에 자루그물을 달아 까나리, 새우, 조기 등을 잡았다.

강화, 석모, 외 등에서는 곳배라 했다. 영광, 신안, 진도에서는 고 대신에 큰 나무 닻을 사용해 닻배(멍텅구리배)라 불렀다. 모두 해선망에 속하는 어법이다. 곳배는 사공(선장), 갯사공, 동사 두 명 등 모두 네 명이 일을 했다. 배를 타는 사람만 아니라 해변에서 까나리를 삶고 사공을 위해 밥도 짓고 사람까지 포함하면 모두 다섯 명이 까나리 잡이에 참여했다.

까나리잡이 어선.(사진=옹진군)
까나리잡이 어선.(사진=옹진군)

‘푸드마일리지 제로’, 까나리액젓

백령도 밥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까나리볶음이다. 멸치처럼 말린 까나리를 볶다가 물엿, 간장, 설탕 넣고 간을 맞추고 통깨를 넣어 만든다. 볶음용은 멸치처럼 작은 까나리를 이용하고, 큰 까나리는 액젓용으로 이용한다. 액젓을 만들 때 까나리와 소금을 3:1 정도로 섞는다.

까나리는 백령도 인근 바다에서 잡는 데 문제는 천일염이다. 10여 년 전까지는 백령도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사용했다. 화동에 세 개의 염전이 있었다. 1970년대 만들어진 염전이다. 마지막 남은 염전이 5년 전부터 소금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신안군 천일염을 가져와 사용한다. 좋은 소금을 구하기 위해 어민들이 직접 신안군을 방문해 염전을 살펴보고 선정한다. 그리고 수협을 통해 유통한다. 이러한 과정은 중국산 등 수입소금이 백령도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두무진 농수산물판매점에서 판매되는 까나리 액젓.
두무진 농수산물판매점에서 판매되는 까나리 액젓.

백령도에서 까나리를 처음 만난 곳은 숙소의 섬 밥상에서다. 멸치볶음처럼 올라왔는데 분명 멸치가 아니다. 솜씨 좋은 안주인의 손맛도 더했지만 백령도에서 잡아 몽돌해변(장술이라 부른다)에 말린 것이니 요즘 하는 말로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가 제로인 신선한 식재료이다. 어부의 손을 떠나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거리가 제로인 슬로피시이다. 맛이 없으면 이상하다.

두 번째로 만난 곳은 냉면집이다. 이곳에서는 액젓으로 만났다. 냉면에 맛을 더할 때나 면수나 육수를 마실 때 액젓을 넣었다. 냉면집만 아니라 백령도 많은 식당에는 식탁에 까나리액젓이 있다. 가정에서도 김치를 담글 때만 아니라 미역국을 끓일 때, 채소 겉저리를 할 때, 조림을 할 때, 모두 까나리 액젓이 들어간다. 간을 더할 때 소금 대신 넣는 것이 까나리였다. 백령도의 손맛은 까나리맛이라 해도 될 것 같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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