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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휴양지, 시민 품으로

[김준의 섬섬옥수] 거제시 저도

2019.12.18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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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역사를 톺아보면 진해만은 권력을 품은 바다 맞다. 조선조에는 어민들의 바다가 아니라 왕실의 바다였다. 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제국의 바다였고, 해방후 진해만 길목에 있는 저도는 대통령의 휴양지였다. 황금어장에 솟아 있던 여러 섬들은 군사기지였다. 그 상징인 저도는 바다의 청와대, 청해대로 군림을 했다. 여행객은 물론 주민들도 가까이 하기 힘든 섬이요 바다였다.

유람선을 타고 20여분,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 ‘버드레’ 마을에서는 소리치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뭍에서 짐승들이 헤엄쳐 들어와 가축을 잡아먹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기록이 <성종실록>에 등장하기도 한다. 생김새가 학과 같아 학섬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돼지’섬이 되었을까. 구전되는 이야기로는, 큰 구렁이에 쫓기던 개구리를 본 학이 돼지로 변해 구렁이를 물어 죽인 후 저도가 되었다고 한다. 구렁이는 죽어서 사근도가 되고, 개구리는 지쳐 죽어 망와도가 되었단다. 저 근처 있는 바위섬의 이름이다.

멸치잡이 어선 뒤로 거가대교 두 개의 다리를 잇는 섬이 저도다.
멸치잡이 어선 뒤로 거가대교 두 개의 다리를 잇는 섬이 저도다.


열강은 왜 진해만을 탐냈을까

조선시대 진해만에는 대구, 청어 등 왕실의 밥상을 위한 그물로 가득했다. 일제는 강점기에 왕실의 어장만 아니라 진해만을 통째로 집어 삼켰다. 임진왜란 당시 진해만 곳곳에 왜성을 쌓고 버티다 본국으로 돌아간 지 300여년 만이다.

진해만을 먼저 탐냈던 국가는 러시아였다. 먼저 진해만에 진출하여 주변을 살펴 좋은 자리를 원했다. 두 열강 사이에서 조선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땅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우선 요충지를 군용지로 점령하고 통신망과 항로와 철도부설권를 요구했다. 토지와 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바다의 어장마저 장악했다.

일본은 1905년 3월 30일 강제로 저도주민을 퇴거시켰다. 당시 저도 거주인원은 총 60명이었고, 보상비는 1122원 16전으로 논밭을 매입했다. 이곳에 신호소, 화약고, 부두 등을 갖추고 포대도 구축했다. 일본과 가깝고 최고의 양항의 조건을 갖춘 진해만 그리고 왕실의 어장까지 있으니 이 보다 좋은 곳이 있었을까 싶다.

게다가 멸치, 청어, 정어리 등 진해만에서 많이 잡히는 바닷물고기는 식용은 물론 군수용 기름으로 사용하기도 좋았다. 진해만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절영도, 가덕도 그리고 저도에 일본의 해군기지가 자리를 잡았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이곳을 제주와 함께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고자 했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포 진지.
일제가 만들어 놓은 포 진지.


대통령의 섬, 시민에게 개방하다

일본의 패망과 해방, 그 후 저도는 대통령 별장으로 바뀌었다.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은 휴양지로,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바다의 청와대란 의미로 ‘청해대’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시절 청해대 지정을 해제했지만 2008년 다시 대통령의 별장으로 지정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저도를 찾아 나뭇가지로 해수욕장에 쓴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이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한 대로 47년 만에 저도를 시민에게 개방했다.

이제 누구나 저도를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번에 300여 명씩, 오전 오후 두 차례로 제한하고 있다. 거가대교를 놓으면서 다리가 연결되었지만 섬에 갈 수 있는 길은 유람선이 유일하다.

저도를 안내하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방문객들.
저도를 안내하는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방문객들.


이번 저도 방문에 여행객만 아니라 동행한 안내인과 안전요원도 수십명에 이른다. 이들은 걷는 길 곳곳에서 길을 안내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청해대와 함대 등 촬영금지 구역에서 촬영을 막는 것이다. 유람선사 측에서도 매우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국방부(해군)의 협조를 얻어 개방을 했지만 완전한 개방은 아니기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완전개방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제시는 완전한 개방을 통해 외도와 장사도를 잇는 해양관광의 거점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섬개발 방식을 두고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적극 나설만한 일이다. 대통령의 별장을, 그것도 섬에 있는 별장을 갈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숲이 평안하니 걷는 사람이 행복하다

계류부두에서 내린 여행객들이 길목마다 서 있는 안내인의 안내에 따라 산책길로 들어섰다. 동백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일본이 설치한 포대 진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곳에 거가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마침 여행객을 가득 실은 유람선이 거가대교를 밑을 지나고 있었다.

저도 방문은 하루에 두 번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는 유람선은 자주 운항을 한다. 운이 좋은 날은 수십 마리 돌고래가 뛰는 것도 볼 수 있다. 오전에 운항한 저도 유람선을 탔던 사람들은 그 행운을 누렸단다. 오후보다 오전이 돌고래를 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숲이 평온해 걷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숲이 평온해 걷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저도에서 주민들이 떠나고, 오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지만 아름드리 곰솔·전나무·동백나무·팽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었다. 고라니·사슴·왜가리 등 섬과 바닷가에 서식하는 동물들도 인간들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했을 것이다. 얼마나 행복했을까. 대통령이 걸었다는 산책로이니 얼마나 잘 정비되었겠는가.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인간의 삶이 행복한 것은 누군가 어떤 것인가 희생으로 얻어진다.

나무가 행복하고 숲이 평화로우면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온화해진다. 이게 힐링이요, 치유의 숲이다. 숲길을 지나니 잘 다듬어진 잔디밭으로 이어졌다. 경계에 대나무가 빼곡하다. 저 어딘가 섬사람들이 집을 짓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며 살았을 것이다.

잔디밭은 농사를 지었던 논이다. 그곳에 곰솔과 말채나무가 어깨를 기대며 서 있다. ‘저도의 사랑나무’ 연리지목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자식이 없는 부부가 손을 잡고 돌며 기도를 하면 자식이 생긴다고 한다.

저도 해수욕장.
저도 해수욕장.


바닷가에는 곰솔이 숲을 이뤄 갯바람을 막고 있다. 그 너머에 해수욕장과 진해만이 펼쳐져 있다. 누군가 해수욕장 모래밭에 ‘저도의 추억’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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