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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자연스런 교육 풍토

2018.06.29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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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막을 내린 미국 남자프로골프(PGA)대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 발생했다. 미국의 유명 프로골퍼인 브라이슨 디쉠보(Bryson Dechambeau)가 전날 경기 중 컴퍼스를 사용해 핀의 위치를 파악하려 한 것이다.

미국프로골프(PGA) 선수 브라이슨 디쉠보(Bryson DeChambeau)가 지난 달 17일 US오픈 챔피언십 마지막날 대회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프로골프(PGA) 선수 브라이슨 디쉠보(Bryson DeChambeau)가 지난 달 17일 US오픈 챔피언십 마지막날 대회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골프 룰은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중시한다. 이런 까닭에 각종 도구나 전자기기 사용 등을 금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침반 사용은 부분적으로 허용되는 반면, 제도용 컴퍼스 활용은 대체로 금지하고 있어 논란에 휩쓸렸다.

디쉠보 선수의 컴퍼스 사용이 묵과돼야 할 일인지, 마땅한 처분이 뒤따라야 할 일인지는 전문가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골퍼로서 디쉠보의 독특한 행동이 컴퍼스 사용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디쉠보는 컴퍼스 활용에 앞서, 길이가 똑 같은 골프 아이언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골프팬들 사이에서는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골프 아이언들은 보통 1번에서 9번까지로 번호가 메겨지고, 엣지 종류는 번호가 따로 붙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실전에서 1~2번은 잘 사용되지 않고, 대개는 3~9번까지의 7개와 엣지 2~3개가 더불어 이용된다. 채의 길이는 엣지 종류가 가장 짧고, 번호가 낮아질수록 길어진다. 헌데 디쉠보는 9개 아이언 길이를 동일하게 95.25cm짜리로 유지하고 있다.

필드의 물리학자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실제로 미국 텍사스 주의 남감리교대학(SMU)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은근히 튀는 골퍼로 알려져 있지만, 전공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점에 관한 한 칭찬받을 구석도 없지 않다. 서구의 과학계는 창의성을 매우 중시하고, 이런 분위기는 초중등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디쉠보는 과학도 출신으로써 창의성에서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골퍼이다.

얼핏 보면 전혀 다를 것 같은 2개의 세계를 직업 현장에서 녹여내는 예는 사실 드물지 않다. 지난 16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아이슬란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 메시의 페널티 킥을 막아낸 할도르손의 골키퍼도 비슷한 경우다.

인간을 비롯 모든 동물들의 세포에 자리한 미코콘드리아의 구조. 에너지 전환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 보다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은 엔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연의 뛰어난 효율성을 입증한다.(사진=켈빈송)
인간을 비롯 모든 동물들의 세포에 자리한 미코콘드리아의 구조. 에너지 전환을 담당하는 미토콘드리아 보다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은 엔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연의 뛰어난 효율성을 입증한다.(사진=켈빈송)

할도르손은 아이슬란드의 국가대표 골키퍼이지만, 축구선수 외에 비디오 제작감독이라는 또 다른 직업도 있다. 그가 제작한 광고 중에는 축구를 소재로 한 것도 있는데, 이는 골키퍼라는 직업과 무관하지 않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상 이미지를 다루는 데 익숙한 그는 경기 후 메시의 페널티 킥 습관 등을 분석한 것이 페널티 킥을 막아내는데 주효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 선수 가운데 스포츠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서구에는 유난히 많다. 특히 큰 돈이 나오는 인기 프로 스포츠가 아닌 종목의 경우 투자전문가나 교사, 일선 마케팅 담당자 등 '딴 일'을 하는 예가 수두룩하다. 나아가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는 선수들 가운데도 별도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전문가를 길러낸다면 측면에서 교육 문화는 대별하자면, 아시아와 서구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같은 나라라도 개인별로, 가정별로, 또 학교별로도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서구의 교육 문화는 자연스러운 반면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인위적인 면모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자연스런 경향 혹은 인위적 교육 풍토는 스포츠 분야에만 물론 국한된 게 아니다. 다양한 전공의 선택이나 직업시장 진출 등에 있어서도 아시아와 서구 사회는 사뭇 차이가 있다.  과장되게 단순화하면 10~20년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의대 아니면 법대 진학을 권유 혹은 은근하게 강요 받는 풍토가 있었다.

자연계 혹은 생태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성이다. 동식물 가릴 것 없이 생김새부터가 갖가지이며, 같은 종류의 생명체라도 특징이 제 각각이다. 덩치가 큰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작은 녀석도 있다. 큰 놈은 아무래도 힘이 센 경향이 있는데, 작은 놈은 대신 동작이 보통은 빠르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쳇말로 소질이나 적성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도 사실 그런 타고난 소질이나 재주의 차이가 발견된다. 쉽고 상대적으로 더 재미있는 교과목이 있는가 하면 어렵고 흥미도 생기지 않는 교과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입시와 취업을 위해서 적성을 무시하고 학생들은 ‘닥치고 공부’로 내몰리는 예가 많다.

특정 과목에 소질이 없거나 타고난 재주가 부족해도 과외나 보충학습,  혹은 이른바 죽기살기 식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있다. 학교 외 학원 교육이 성행하는 직접적인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교육 풍토는 언제인가는 한계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인위적 교육 풍토의 단점은 특히 예체능 교육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조수미씨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성악가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다.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친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한 것도 맞다.

그러나 조씨는 한편으로 천상의 목소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음색을 타고 났다. 음감 같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조씨보다 1.5배 혹은 2배 정도 노력을 더했다면, 또 더 좋은 스승을 만났다면 조씨보다 1.5배 혹은 2배 정도 훌륭한 성악가가 됐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한국이 리틀 야구나 청소년 축구가 국제대회에서 거두는 성적은 대체로 뛰어나다. 성인 야구나 축구에 비해 세계 랭킹도 대개는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인 무대에서 세계적 수준을 인정받은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는 그에 비례해 많지 않은 편이다.

물리학 전공을 골프 현장에서 활용하는 미국프로골프(PGA) 선수 브라이슨 디쉠보(왼쪽). 골프백에 들어 있는 아이언의 길이들이 동일한 건 과학적이고 창의적 그의 사고 때문이다. (사진=브라이슨 디쉠보)
물리학 전공을 골프 현장에서 활용하는 미국프로골프(PGA) 선수 브라이슨 디쉠보(왼쪽). 골프백에 들어 있는 아이언의 길이들이 동일한 건 과학적이고 창의적 그의 사고 때문이다. (사진=브라이슨 디쉠보)

학교 공부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을 예로 든다면 아이비 리그 대학 등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한인 학생들은 인구 비례로 월등히 많다. 하지만 전공 분야에서 일류학자로 발돋움하는 한인들은 명문대 진학 비율에 훨씬 못 미친다.

자연스런 교육 풍토가 과도하게 인위적인 교육에 비해 궁극적으로 더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유리하다는 점은 자명하다. 한 사회를 놓고 볼 때, 자연스런 교육은 인재를 효과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배출시킬 수 있다. 학교 성적이 좋으면 특정 전공의 학과로만 우르르 몰리는 식은 노동력의 사회적 자원 배분이라는 관점에서도 효율적이지 않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자연보다 효율적인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 큰 저항 없이 통용되곤 한다. 예를 들자면 한 둘이 아니다. 자동차 엔진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생명체의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효율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그럴듯한 인공 옷감도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를 넘어서기 힘들다. 제 아무리 훌륭한 드론이 등장한다 해도 독수리나 비둘기의 자유로운 비행을 흉내내지는 못할 것이다.

노력은 틀림 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장벽을 뛰어 넘는 인간적 성취는 칭송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각자에게 주어진 잠재력의 한도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자연은 다양성에 그 진수가 있다. 다양성이 만개할 때, 한 사회의 효용 총량은 증대된다. 적성이나 흥미를 도외시하고 억지로 사람을 키워내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크다. 인위적으로 획일화를 부추기는 교육은 수준 낮은 방식이다. 사회가 또 각 가정이 교육에서 우선 할 일은 자연스런 교육, 그러니까 개개인의 적성을 살리고 그 적성에 따라 인재들을 요소에 배치하는 일일 것이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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