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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 흑흑흑~ 할땐 흙이 생각나는 까닭은?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귀촌 DNA

2018.05.31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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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시골을 너무 좋아합니다. 특히 딸 아이가 그렇습니다. 풀이나 벌레,  동물들을 남달리 친숙하게 느끼는 듯 해요.” 세종시의 한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M씨 부부는 약 1년 전 고심 끝에 시작한 시골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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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016년 말 인근 공주의 한 시골 마을에 땅을 구한 뒤 자그마한 집을 지었다. 이 집은 바닥면적 33평방미터(약 10평) 정도인데 1층은 거실과 부엌, 그리고 2층격인 천정 높은 다락은 침실로 이용한다.

9살인 딸과 7살인 아들을 포함 이들 네 식구는 지난 1년 동안 거의 한번의 주말도 거르지 않고 시골 집을 찾았다. 비를 맞으며 텃밭도 만들고, 하루 종일 정원 꾸미기에 매달리기도 했다. 부부는 동네의 몇몇 이웃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주말 농촌 생활’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

“남편과 아내 분 모두 도시에서 자랐다는데, 작물이며 나무 등을 가꾸는 솜씨와 정성이 대단합니다. 아이들도 얼마나 밝게 잘 뛰어 노는지 몰라요. 주말이면 동네에 생기가 도는 듯합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주말이 기다려지곤 한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주말이면 전원 생활을 하는 한 가족이 마련한 텃밭. 양파에서 토마토 상추까지 약 10여종이 자란다.
주말이면 전원 생활을 하는 한 가족이 마련한 텃밭. 양파에서 토마토 상추까지 약 10여종이 자란다.

시골 생활을 하는 동기나 가족 구성, 체류 형태 등은 조금씩 다르지만, 귀촌 혹은 귀농, 전원생활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대략 지난 10년 사이 전국적으로 최소 수십 만 명이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삶터를 시골로 옮겼다.

당장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시골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지 못한 사람들, 시골 생활을 시쳇말로 막연한 ‘로망’으로 여기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수백만 명을 웃돌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지난 10년은 귀촌이 하나의 시대적 문화 코드로 자리잡은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촌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탄생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시골로 발걸음을 떼는 이유가 저마다 똑같을 수는 없을 터이니, 한마디로 문화 코드로써 귀촌 바람의 근본 원인을 짚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태학적, 인류학적 측면에서 귀촌 바람의 맥락을 읽어내는 건 꼭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최근 두드러진 귀촌(귀농, 귀어, 전원생활 등도 포함) 흐름은 사실 전적으로 새롭게 출현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귀촌은 일종의 ‘복고’요, ‘복원’에 가까운 현상이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오늘날과 같은 도시화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길게 잡아봐야 100년 남짓이다. 국가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몰려 살고, 건물은 고층화하고, 도로가 지하를 뚫으며 내달리거나 공중을 가로지르는 등의 외형이 자리 잡은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진화적 측면에서 인류는 호모사피엔스 등장 이래, 적어도 지난 십 수 만년 동안 ‘시골 생활’을 했다. 회색의 빌딩, 잿빛의 아스팔트보다는 녹색의 산과 들판에 훨씬 익숙할 수 밖에 없는 DNA를 갖고 있다.

한국은 특히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친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른바 압축 성장으로 요약되는 한국의 발전상은 RPM 높은 엔진에 의존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비약적인 경제 발전과 경제 규모의 증대는 도시화에 따른 부작용을 한층 더 키웠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주거 양식은 고층건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아침 출근시간부터 저녁 퇴근 때까지 엘리베이터 신세를 져야 하고,  두세 뼘 남짓한 두께의 콘크리트 벽을 경계로 위층과 아래층 또 양 옆집까지 많게는 다른 4가구와 물리적으로 맞대고 살아야 하는 처지다.  

반경 100~200m 내에 물리적으로 수많은 이웃들이 있지만, 인간적인 교류나 친목의 정도는 형편 없이 떨어진다. 아파트 단지 한 곳에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이 밀집해 살면서도, 심지어 외로움을 느끼는 주민들 또한 적지 않다.

도시 생활은 시골 생활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편리함은 보장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곧 마음의 편안함은 아니다. 아니 때때로 심적인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첨단 전자제품을 구입하면,  꼭 뒤따르는 게 비닐이나 플라스틱 혹은 스티로폼 같은 것들인데 이들은 그 자체로 편치 않은 느낌을 유발할 수 있다.

편리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가, 또 수많은 이웃과 한 공간에 거주하면서도 소외감마저 드는 아파트 생활이 그 자체로 불편함을 자아내는 것은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편치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생물학적으로 얘기하면, 인간의 DNA는 도시화에 따른 부산물들을 그저 편리함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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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계속해 살아온 사람들, 혹은 최근 시골을 찾아간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의 장점을 과학적, 분석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겨울이 끝나갈 즈음 매화 줄기에 물이 차 오르기 시작하고, 마침내 꽃망울이 터뜨려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밀려드는 일종의 행복감은 너나 없이 느낄 수 있다.  녹음이 짙어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시골에서 아침 혹은 저녁시간 숲이나 한 그루의 나무를 고즈넉이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다.

귀촌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기 이전, 도시에서 행복이란 예를 들어 아파트를 하나 장만 한다든지, 혹은 소형차를 타다가 중대형 승용차를 구입하는 따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값비싼 승용차나 아파트와 비교할 때, 꽃잎에 매달려 있는 젖먹이 손가락보다 작은 오이의 값어치는 아마 수백 원짜리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는 오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신기함이나 흐뭇함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사실,  혹은 고가의 승용차를 탈 때의 만족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시골 생활은 특히 농사를 동반한다면 육체적 피로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도시 생활에 비해 마음이 편안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하루가 다른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도 있다.

시골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런 저런 만족감이 줄곧 도시에서만 살다 온 사람들에게는 새로울 수 있다. 하지만 시골 생활에 따른 만족감이나 편안함 등은 그 자체로는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도시화라는 거대한 엔진이 작동되면서 그 ‘소음’으로 인해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격이라고나 할까.

2000년대 초반 이후 시작돼 큰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한 귀촌은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강렬한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압축 성장이나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반작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서구 사회 예를 들어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도시화 과정에 한국 사회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이에 따라 도시화의 부작용이나 문제점이 현저해지기 이전에 교외와 전원생활이 나름의 흐름을 형성했다. 대도시 주변에 잘 발달된 교외(suburb)나 농촌(rural)과는 구분되는 전원(bucolic) 주택단지 등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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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귀촌 행렬은 아직 충분히 분화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시골 환경이라는 공통 기반을 갖고는 있지만, 귀농과 전원 생활은 수입원이나 일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도시에서 시골로 유턴은 그간 한국 사회의 흐름을 감안할 때, 전원생활이나 주말 전원생활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농사가 중노동인데다가 기계화 의존도가 점차 커지고 있는 탓에 향후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인구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도시 주변에 자생적으로 자리를 잡는 ‘한국형 교외’의 확산이 유력시 되는 이유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시골을 찾든, 자연이 주는 축복을 도시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우리의 DNA가 그리 설계되었으니까.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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