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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운 지하철 시를

임철순 이투데이 이사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임철순 이투데이 이사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2016.04.25

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몇 년 전 서울시가 시민공모를 통해 지하철에 게시할 시를 선정할 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심사 분위기나 접수된 시들의 수준은 대체로 실망스러운 편이었다. 요즘 지하철 시 문제로 벌어지는 설왕설래를 보니 당시 나름대로 예상했던 문제점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시된 시 중에 공공장소에 부적절한 선정적 비도덕적 작품이나 읽기에 불편한 내용, 이념성이 짙은 작품이 있다는 게 논란의 내용이다. 많은 건수는 아니지만 해마다 이런 작품에 대한 민원이 제기됨에 따라 서울시는 8월까지 작품의 상당수를 교체키로 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해 2008년부터 시내 지하철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시 작품을 게시해 왔다. 4월 현재 288개 역 승강장 4,686곳의 스크린도어에 시민 공모 작품 등이 게시돼 있다. 문인단체가 추천한 시가 75%, 일반시민들의 작품이 25% 비율이다. 

그런데 일반시민들보다 문인단체 추천시가 더 문제라고 한다. 서울시는 같은 시를 오래 게시하면 시민들이 싫증을 내므로 시 자체를 다른 작품으로 교체하거나 역 안에서 게시장소를 다른 작품과 서로 바꾸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인단체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하철에 시가 걸리면 5만원을 받는데, 돈보다는 단체의 체면이 걸린 문제가 돼버려 단체 간의 경쟁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심사를 거칠 것도 없이 알음알음으로 작품을 뽑다 보니 수준이 낮거나 어느 정도 수준은 되지만 일반인들의 정서와 맞지 않아 오히려 불쾌감을 주는 작품들이 다수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것은 결국 지하철 시 제도를 운영하는 서울시가 생각을 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가 새로 결정한 방침은 공공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을 8월부터 교체하되 많이 알려진 명시로 게시작의 50%를 선정하고 나머지 50%는 시민들의 응모작 중에서 고른다는 것이다. 문인단체들이 추천한 시는 일단 뺀다는 것인데, 이 방침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다. 

지하철 시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시가 게시되는 곳이 대중교통의 대표적 공공장소이며 스크린도어라는 제한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불쾌감을 주면 안 되며 시가 길어서도 안 된다. 문인들 중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선정적이라는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된 데 대해 모멸감과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당신들이 시를 알아?” 하고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집 속의 시와 지하철의 시는 이를 수용하는 독자들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의 작품이든 시는 문학적으로 일정 수준이 돼야 한다. 그러지 못한 수준 미달 작품은 당연히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잘 알려진 명시를 채택할 경우 우리나라 시인의 작품으로 한정했으면 좋겠다. 어떤 역에는 중국 당(唐)나라 때 시인의 작품을 한자도 없이 한글로만 번역해 놓은 경우가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번역도 썩 잘 된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말 표기가 틀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회색빛 새벽을 밝히는 태양은 떠올으건만 진남빛 하늘을 내 마음 물드리고’ 이렇게 돼 있는 시도 있다. 태양은 떠오르는 것이고, ‘진남빛 하늘을’은 ‘하늘은’의 잘못이다. ‘물드리고’도 ‘물들이고’가 맞는데 시 한 편에 이렇게 틀린 곳이 많으니 시가 아니라 흉물일 뿐이다. 글자 한 자가 빠지거나 받침이 떨어져 나가 엉뚱한 말이 된 경우도 쉽게 눈에 띈다. 지속적인 관리와 보완이 필요하다.  

지하철 시는 1986년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세계적으로 번져 지금은 아일랜드 더블린, 호주의 아델라이드 멜버른 시드니,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독일 슈투트가르트,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리스 아테네,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중국 상하이 등에서 볼 수 있다.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서울의 지하철 시는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지만, 노선 수와 역이 많아 규모 면에서는 다른 도시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시민들의 정서 함양과 문학, 특히 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시를 공들여 선정하기 바란다.

임철순

◆ 임철순 이투데이 이사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는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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