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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물에 ‘교열 실명제’를

임철순 이투데이 이사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임철순 이투데이 이사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2015.11.09

이문구(1941~2003)는 참 정감이 가는 작가다. 그의 글은 읽은 것이라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문체와 말투, 한학의 교양과 어우러진 충청도 사투리의 구수하고 은근한 맛이 읽은 글을 또 찾게 만든다.

소설가 김동리는 이문구의 문학청년 시절에 “내가 아니면 네 문장을 못 읽는다”며 원고를 가져오게 해 1965년 ‘현대문학’(당시는 월간)에 추천해 주었다. 이문구는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글을 쓴 셈이다. 글재주와 달리 오래 사는 복은 타고나지 못해 불과 62세로 타계한 이후 ‘그리운 이문구’ 등 그를 추모하고 회고하는 글과, 작가 자신이 쓴 글이 간헐적으로 출판돼 왔다. 달포쯤 전에도 그의 문학에세이를 모은 ‘외람된 희망’이라는 책이 나왔다.

대부분 읽은 글인데도 다시 보고 싶고 어떻게 편집했는지도 궁금해 바로 그 책을 사서 읽었다. 그런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나도 충청도 출신이지만 내가 모를 충청도 사투리와 말투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틀린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맨 앞에 실린 글은 200자 원고지로 12매 남짓해 보였는데, ‘그대로 안은 채’가 ‘그래도 안은 채’로 돼 있고, ‘나이 오십 줄’이 ‘나의 오십 줄’, ‘앉을 새’가 ‘앉은 새’로 돼 있는 등 다섯 군데나 틀리거나 띄어쓰기, 쉼표 사용에 문제가 있었다. 다른 글에서는 ‘박봄(복)함’, ‘지렁이 한 마리도 까닭 없이 밝(밟)은 적이 없고’ 이런 것들이 눈에 띄었다. ‘걸음이 드믄(드문) 덤불’  ‘인적 드믄(문) 중에’라는 대목을 보면서 이 책의 교열 담당자는 ‘드믈다’를 표준어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겼다.

또 대부분, 대체로라는 뜻의 ‘대개’를 ‘대게’라고 표기한 곳이 두 군데 있었다. ‘대게 천 년을 찾아 쇤 명절’, ‘대게 50m에 한 사람 꼴’이 대체 무슨 뜻인가? 정말 내가 모르는 대게라는 말이 있나? 일부러를 일부로라고 한 건 일부러 그런 걸까? 설령 작가가 그렇게 썼더라도 대화나 인용이 아닌 한 맞춤법에 맞게 고쳐야 했다.

의재(毅齋) 허백련을 의제(毅齊)라고 해놓거나 문강공(文康公) 이지함을 문간공이라고 표기한 것은 아마도 한자를 모르거나 착각 때문인 것 같았다. 최종률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은 한자로 崔鍾律인데 鍾을 種으로 써놓았다. 저자가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인명에 種을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니 제대로 된 교열 담당자라면 이것도 확인했어야 한다. 머리말과 차례 등을 빼고 본문만 330여 쪽인 책에서 맞춤법 띄어쓰기가 틀렸다고 내가 표시한 곳은 100군데가 넘는다. 참 무성의하고 실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이문구의 에세이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책에서도 무수한 오류와 오자가 눈에 띈다. 여름휴가 때 터키여행을 앞두고 사서 읽은 터키 역사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신문기자 출신이라기에 많은 터키 소개서 중에서 일부러 그의 책을 골랐지만, 틀리고 잘못된 곳이 너무 많아 읽는 내내 짜증스러웠다.

광복 이후 70년 동안 우리의 어문생활은 크게 달라져왔다. 외래어 외국어의 남용, 유행어 은어의 범람과 급변 외에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교열기능의 약화다. 30~40년 전만 해도 언론사나 출판사의 교열기능은 대단했다. 어법 맞춤법 등에 자신이 없을 경우 교열부에 물으면 의문과 논란이 해소됐다. 교열 담당자들은 박식하고 정확하고 권위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전문가나 ‘터미네이터’가 없다. 출판 관계자들은 흔히 믿고 일을 맡길 만한 교열 전문가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열은 아무나 하는 것이고 싼값에 아르바이트를 주어 해치울 수 있는 하찮은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문 잡지 서적 등 인쇄매체는 물론 전파매체도 오자·오류투성이인 게 오늘의 현실이다.

거의 모든 책이 지은이, 펴낸이, 편집, 디자인, 관리, 영업 담당자 등의 이름은 써놓지만 누가 교열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유수한 출판사가 낸 번역서를 일부러 살펴보았다. A사가 표기한 것은 지은이, 그린이, 옮긴이, 감수자, 펴낸이, 기획, 책임편집, 편집, 독자모니터, 디자인, 저작권, 마케팅, 온라인 마케팅, 제작, 제작처, 펴낸 곳 외에 그 출판사의 카페, 트위터, ISBN 등 내용이 다양했다. B사의 책에는 지은이, 옮긴이, 펴낸이, 편집, 마케팅, 펴낸 곳, 디자인, 출력, 종이, 인쇄 및 제본, 라미네이팅(신분증이나 인쇄물의 표면에 필름을 입혀 코팅 처리함으로써 광택이 나고 수명이 길게 하는 기법), ISBN이 있었다. 그러나 교열을 누가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국내 저자의 책은 좀 다를까. 편저자, 펴낸이, 펴낸 곳 외에 주간, 실장, 편집, 디자인, 관리·영업 담당자, 인쇄처 제본처를 표시한 곳이 있었다. 다른 곳은 기획·편집, 전산, 마케팅 및 제작, 경영기획, 관리 담당자 외에 CTP 출력·인쇄·제본 업체를 표시했다.

그렇게 여러 책을 뒤지다가 교열 담당자를 표기한 책을 찾아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세계도서관 기행’은 국회 도서관장을 역임한 유종필 관악구청장이 2010년에 낸 책인데, 편집주간 편집 표지디자인 본문디자인 담당자 외에 ‘교정 이원희’라고 표시돼 있었다. 웅진이 낸 다른 책 ‘환관과 궁녀’에서는 ‘교정 오효순’,  ‘펑유란 자서전’에서는 ‘교정교열 임미영’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이 출판사의 홈페이지에는 오탈자신고를 받는 곳도 있었다.

와이즈베리가 펴낸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도 편집진행, 디자인, 제작 담당자와 함께 ‘교정교열 정진숙’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이렇게 이름을 밝힌 책들이 오자나 오류가 하나도 없는지는 다 확인하지 못했지만, 교열 담당자를 명기한 것만으로도 호감과 신뢰가 간다.

교열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수한 교열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고용/활용을 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출판물에 교열 담당자를 명기하는 게 좋겠다. 다리를 놓고 건물을 지은 다음에는 설계자·시공자 외에 감리를 맡은 회사와 사람의 이름도 동판에 새겨 남기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출판물에는 저자나 편자, 출판사 대표 외에 교열 담당자의 이름을 명기해야 한다. 그래야 교열을 정확하게 하게 되고, 교열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이름이 남으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출판물에 ‘교열 실명제’를 실시하자. 

임철순

◆ 임철순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졸. 1974~2012 한국일보사 근무. 기획취재부장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는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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