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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16)송창식 ‘고래사냥’

2022.07.29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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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 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1975, 작사 최인호, 작곡·노래 송창식)

요즘 한참 인기몰이 중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에 고래 한 마리가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왔다.

이 드라마를 쓴 문지원 작가는 인터뷰에서 “고래는 영우의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말했다. 우영우에게 바다와 고래는 주변의 시선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상공간이자 의지하는 어떤 존재다. 광활한 바다는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고, 그 속에서 고래는 마음껏 유영한다. 고래는 곧 우영우 자신이거나 우영우가 꿈꾸는 존재다.

1975년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 원작자 최인호가 가사를 쓴 ‘고래사냥’이 주제곡이었다.
1975년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 원작자 최인호가 가사를 쓴 ‘고래사냥’이 주제곡이었다.

50년이 조금 안 되는 47년 전에도 사람들 마음속에 또 다른 고래 한 마리가 있었다. 독재와 억압과 울분의 시대, 질식할 것만 같았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금은 중장년에 접어든 70년대의 청춘들에게 그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는 해방구이자 비상구이자 꿈의 상징이었다. 

그 시대의 초상 같은 노래,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다. 노랫말을 따라가 본다.

청바지에 생맥주를 마시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슬픔과 결핍뿐이다. 무엇을 할까 둘러보아도 모두가, 모든 것이 각각의 이유로 등을 돌리고 앉아있다. 견디는 건 각자의 몫이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깨어나면 금방 잊힌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꿈을 찾아 떠나자. 푸르른 동해바다로 가자. 특급열차는 내 것이 아니다. 삼등완행열차를 타야 한다. 저항은 속수무책이고 사랑은 유리알처럼 깨져도 가슴에 뚜렷한 꿈마저 버릴 수는 없다. 동해바다에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보아라.

노래는 청춘의 이상을 ‘고래’로, 꿈을 좇는 여정을 ‘사냥’으로 치환했다. 억눌린 청춘을 향한 자유와 해방의 선동가였다. 하지만 횃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라고 등을 떠밀진 않는다. 대신 ‘꿈마저 버리지는 말자’고 노래한다. 현실도피적, 퇴행적 낭만이라 해도 좋다. 그게 그 시절의 시대정서이자 청년문화였다. 50년 후의 청춘들이 연인과 함께 벚꽃 만발한 여수 밤바다로 고속열차를 타고 몰려간다면, 70년대 청춘들은 이 노래를 목 놓아 부르며 동해바다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노래는 1975년 개봉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OST 중 한 곡이었다. 시대의 감성을 읽는 데 탁월했던 작가 최인호(2013년 사망)는 1972년 일간스포츠에 에피소드 형식의 소설 ‘바보들의 행진’을 연재했다.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기력한 대학생들의 방황과 좌절, 사랑을 그려 젊은이들의 폭발적 호응을 받았다. 소설에는 실의에 빠진 젊은 남자 주인공이 고래를 찾으러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충무로의 젊은 이단아 하길종 감독(1979년 38세로 사망)은 이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최인호는 영화 주제곡으로 ‘고래사냥’이란 제목의 가사를 쓰고는 송창식에게 청춘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송창식은 앉은 자리에서 뚝딱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병태(윤문섭)와 영자(이영옥)가 주인공인 영화는 5월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윤문섭은 이 영화 하나에만 출연하고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연포해수욕장에서 기타 치며 놀다가 캐스팅됐다고 한다. 영화의 엑스트라들도 실제 대학생들이었다.

영화는 유신 독재정권으로부터 사전 검열을 받아 무려 30분이 넘는 분량이 잘려나갔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작사가 최인호를 불러 ‘고래’가 의미하는 게 무어냐고 추궁했다. 영화에는 송창식의 다른 노래 ‘왜 불러’도 있었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에 ‘시원하게’ 삽입되었다. 결국 두 노래는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가사가 염세적이고 퇴폐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당국도 해적판의 흥행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음반사전심의제도는 가수 정태춘이 주도해 1996년 폐지됐다).

‘고래사냥’과 ‘왜 불러’가 실린 ‘송창식 2집 앨범’.
‘고래사냥’과 ‘왜 불러’가 실린 ‘송창식 2집 앨범’.

‘고래사냥’은 그해 발매한 송창식 2집 골든앨범(부제 ‘바보들의 행진 OST’)에 수록됐다. ‘왜 불러’와 대학가에 구전돼온 서정적인 노래 ‘날이 갈수록’(작곡 김상배) 등 3곡이 실렸고 나머진 영화와 무관한 노래들이다.

노래 ‘고래사냥’이 영화 ‘고래사냥’의 주제곡인 것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 ‘고래사냥’은 이 노래 8년 후에 나왔다. 최인호는 1983년 이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장편소설 ‘고래 사냥’을 발표했다. 역시 청춘들의 사랑과 방황을 그렸다.

그 다음해 배창호 감독이 이걸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의 주제곡과 삽입곡은 주연을 맡은 ‘작은 거인’ 김수철의 자작곡 ‘나도야 간다’ 등이다. ‘고래사냥’은 여전히 금지곡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 수 있나/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님 찾아 꿈 찾아 나도야 간다’라는 가사의 ‘나도야 간다’는 1930년 용아 박용철의 시 ‘떠나가는 배’에 있는 구절을 차용한 것인데, 표절이라는 다른 이유로 금지곡이 된다,

노래 ‘고래사냥’이 나온 지 8년 후에 나온 영화 ‘고래사냥’. 배창호가 감독했고 역시 최인호 원작이다.
노래 ‘고래사냥’이 나온 지 8년 후에 나온 영화 ‘고래사냥’. 배창호가 감독했고 역시 최인호 원작이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이름은 7080의 아바타인 병태와 영자였다. 영화는 ‘무릎과 무릎 사이’ ‘애마부인’ 같은 저예산 에로영화가 판치던 그해 흥행 1위(서울 관객 42만 명)를 기록했다.

노래 ‘고래사냥’은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그중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처음 나와 우승한 자우림이 록 스타일로 강렬하게 편곡한 노래가 유명하다.

‘고래사냥’은 청춘의 영원한 노래다. 많은 대학교의 응원가로 오랫동안 불리웠다.

정호승의 시를 읽는다.

‘고래를 위하여’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수록, 안치환이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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