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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억새의 군무에 걱정을 날려보내다~

[가을 여행주간 ⑥] 대전 대청호 오백리길 ‘호반낭만길’ 방문기

2017.11.13

‘가을’이 무르익는다. 계절을 머금은 은행잎에 한껏 설레는 요즘. 어디론가 ‘탁’ 떠나고 싶은 마음을 발걸음에 담는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일상이 아닌,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행’은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담아, ‘가을 여행’을 떠났다. 

쳇바퀴 도는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매일같이 오고가던 버스를 탔는데도, 마음만은 가볍다. 여행이 주는 기쁨이다. 한 시간에 한 대만 도착하는 작은 버스로 환승해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골 길을 따라,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마저 정겹다. 그 따스함에 잊고 있던 ‘여유’마저 느낄 즈음, 탁 트인 호수가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대청호’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전시의 가을주간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이자,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전시의 가을주간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이자,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2017 가을여행주간을 맞아, 지난 26일에는 대청호를 따라 걷는 ‘대청호 오백리길 울트라 걷기대회’가 개최했다.
2017 가을여행주간을 맞아, ‘2017 가을, 걷자 가을로(路)’라는 부제로 지난달 말 대청호를 따라 걷는 ‘대청호 오백리길 울트라 걷기대회’가 개최됐다.
 

푸른 물결을 따라 계절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대청호’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호수다. 대전시 대덕구와 청주시 서원구 사이의 ‘금강’을 가로막고 있으며, 대청호 주변의 약 580리(227km)에 해당하는 ‘대청호 오백리길’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때문에 대청호의 품을 따라 걷는 트래킹과 드라이브 코스로도 사랑을 받는 곳이다. 다양한 코스들이 눈길을 끌지만, 그중에서도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로 알려진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호반낭만길(이하 호반낭만길)’은 호반을 따라 군락을 이룬 억새, 갈대 등이 장관을 이루며, 늦가을의 낭만에 취하기에 충분하다.

-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호반낭만길은’ 대전시 동구 마산동삼거리에서 시작해, 추동습지, 대청호자연생태관, 연꽃마을, 금성마을삼거리로 구성되며, 총 10㎞ 거리, 4시간이 소요되는 트래킹 코스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호반낭만길은’ 대전시 동구 마산동삼거리에서 시작해, 추동습지, 대청호자연생태관, 연꽃마을, 금성마을삼거리로 구성되며, 총 10㎞ 거리, 4시간이 소요되는 트래킹 코스다.

호반낭만길의 중심이 되는 ‘추동(秋洞)’은 이름처럼 ‘가을’이 되면 더 빛나는 곳이다. 이곳에 위치한 ‘추동습지’는 천혜의 생태습지를 간직해, 2008년 ‘추동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습지’는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의 콩팥’으로 불린다.

다채로운 생물들이 공존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을 비롯해, 원앙, 맹꽁이, 흰목물떼새 등이 서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습지 주변으로 자라는 억새와 갈대 등은 수질정화는 물론, 추동을 찾는 이들에게 ‘호반의 낭만’을 느끼게 해준다.

호반낭만길은 사진 및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가 되기도 한다. 2005년 방영한 드라마 ‘슬픈연가’의 촬영지로 선정된 이곳은 잔잔한 호수와 억새, 갈대가 어우러지며, 쓸쓸하고 애잔한 감성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호반낭만길은 사진 및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가 되기도 한다. 2005년 방영한 드라마 ‘슬픈연가’의 촬영지로 선정된 이곳은 잔잔한 호수와 억새, 갈대가 어우러지며, 쓸쓸하고 애잔한 감성을 시청자들에게 전했다.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드라이브 코스로 마주했던 이 길을 ‘나 혼자’ 걸어보기로 한다. 추동에서 이어진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걷다보니, 가을 하늘이 손에 잡힐 듯하다. 늦가을이 파란 하늘과 이를 마주한 잔잔한 호수의 물결, 여기에 더해진 상쾌한 가을바람. 콧노래가 절로 나오기에 이른다.

‘쏴아아~’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은빛 억새의 군무가 답답했던 그간의 마음을 위로한다. 빠르게 지나가버려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새겨지고, 고민과 걱정도 바람 따라 흩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바람을 따라 몸을 맡긴 억새의 향연에 저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된다. 늦가을이 출렁이는 듯 만추의 멋에 취한다.
바람을 따라 몸을 맡긴 억새의 향연에 저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된다. 늦가을이 출렁이는 듯 만추의 멋에 취한다.


억새는 줄기가 가늘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은빛과 흰색을 띠는 반면 갈대는 뻣뻣한 줄기로 인해 거친 매력을 지닌다.
‘억새’는 줄기가 가늘어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반면 ‘갈대’는 뻣뻣한 줄기로 인해, 거친 매력을 지닌다.

바람을 따라 몸을 맡긴 억새의 향연에 매료될 무렵, 한 시가 눈에 들어온다.

억새꽃 다발은 사랑하는 이에게는 보내지 마셔요 / 다만 그대를 가을 들녘에 두고 떠난 이의 뒷모습에 보내셔요 / 마디마디 피가 맺힌 하얀 억새꽃 / 불같은 미움도 삭혔습니다 / 잠 못 드는 그리움도 삭혔습니다 / 솟구치는 눈물도 삭혔습니다 / 삭히고 삭혀서 하얗게 바래어 피었습니다/ 떠난 이의 그 호젓한 뒷모습에 아직도 가을이 남아 있거든 억새꽃 다발을 보내셔요 / 한 아름 가득 보내셔요’

시인 김순이의 연작시인 ‘억새의 노래’는 가곡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시를 따라 읽다보니, 환희에 가득 찼던 마음도 괜스레 쓸쓸해진다. 늦가을이 주는 쓸쓸함이 ‘억새’와 이 ‘시’ 안에서 오롯이 묻어나온다.

따스한 햇살과 청량한 가을바람,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니,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계추 속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따스한 햇살과 청량한 가을바람,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니,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시계추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호반낭만길의 끝자락, 구불구불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연인과 마주하며 사진을 찍고,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이야기 나누는 어머니의 모습에, 내 마음도 금세 포근해진다. 문득 함께 왔으면 좋았을 소꿉친구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눠오던 친구. 지금은 또 다른 도전을 위해 공부 중인 친구와 이 여행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서로가 원했던 모습으로 내년 추동의 늦가을을 맞이하기로 다짐해본다.

친구와 닮은 인형을
친구와 닮은 인형을 ‘아바타’ 삼아 함께 사진 찍어보았다.


- 호반낭만길은 대청호의 숨겨진 보석과도 같다. 흙길을 걷고, 가을 바람을 쐬며, 오랜만에 늦가을을 맘껏 만끽한 시간이었다.
호반낭만길은 대청호의 숨겨진 보석과도 같다. 흙길을 걷고, 가을 바람을 쐬며, 오랜만에 늦가을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천천히 걷는 여유를 낼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파란 가을 하늘, 따스한 가을 햇살과 은빛 억새. 여기에 잔잔한 호수의 물결까지 더해지며, 오늘 하루 만큼은 느림의 미학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늦가을이 선사한 이 계절의 아름다움에, 또 다른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깊어가는 가을,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가을로(路)’ 떠나보길 바란다.



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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