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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세상을 보다

장애인의 날에 만난 시각장애인 연극단 ‘마냥’

2018.4.20

“우연한 기회에 소개팅을 주선 받아 한식집에 갔습니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음식이 나왔고,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먹으려 했죠. 그런데 몇 번을 뜨려고 해도 자꾸 국이 안 떠지는 거에요. 알고 봤더니 숟가락에 씌워둔 위생용 커버를 벗기지 않고 국을 떴던 거였어요. 어찌나 민망하고 창피하던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경험이었습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은 1972년부터 민간단체에서 개최해 오던 ‘재활의 날’이 그 시초로 알려졌다. 1989년 12월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 의거, 1991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한 것은,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기에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라 한다.

실제로 장애를 딛고 세상에 나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실제로 장애를 딛고 세상에 나선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장애인의 날이 다가오면서 국가적으로 많은 기념행사가 열리는 요즘. 형식적인 행사들보다 실제로 장애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갈급함이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인천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통해 장애를 딛고 당당히 세상에 앞에 나선 시각장애인 연극단 ‘마냥’의 단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겪었던 사연을 연극으로 만들다  

몸풀기 게임으로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고 연습을 시작했다
몸풀기 게임으로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고 연습을 시작했다.

인천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마련된 연습장에 들어가니, 한창 몸풀기 연습이 진행 중이었다. 마냥은 매주 1회 복지관에 모여 연극 연습을 진행한다. 모든 단원들이 눈이 보이지 않기에, 만나면 항상 게임을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연습을 시작한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사연을 솔직하게 담아낸 마냥의 연극
시각장애인의 사연을 솔직하게 담아낸 마냥의 연극.
 

몸풀기 연습이 끝나고 올해 진행할 연극의 아이디어 회의가 이어졌다. 자신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연극을 만드는 마냥이었기에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웃지 못할 일화들이 한가득이었다. 

전종일 단원은 “익숙할 것 같으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식사다. 작은 잔치에 가서 식사를 하려고 손을 뻗어 휘휘 저어보니 조금 먼 곳에 음식이 놓여 있더라.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힘껏 들어 올리려 했는데, 거리가 멀어 그릇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어 버렸고 음식을 전부 쏟아버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사연으로 연극 아이템을 짜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자신들의 사연으로 연극 아이템을 짜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김명원 단원은 “대중교통 이용도 참 난감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갑작스레 만나게 되는 상황이라 선글라스를 끼고 그냥 앉아있다 보면 할머님들이 양보를 안한다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얼마 전에도 한 할아버지가 버스에서 노발대발 하셔서 자리에서 일어나 흰 지팡이를 폈더니 버스 안의 사람들이 전부 놀라며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꼼꼼하게 연기지도를 받는 모습도 인상깊었다
꼼꼼하게 연기지도를 받는 모습도 인상깊었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서로의 사연에 공감하며 안타까워하거나, 웃음 짓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니 이런 소통과 협동이 장애인들에게 왜 더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회의가 끝나고 강당으로 이동해 본격적인 연습을 진행했다. 지난해 좋은 반응을 얻은 연극의 몇 장면을 반복적으로 연습해 연기력을 끌어올렸다.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이금희 단원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이금희 단원.
 

몸풀기와 회의 때 가장 조용했던 이금희 단원은 연극연습이 시작되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정확한 발음과 큰 발성으로 표독스럽게 시각장애인들에게 핀잔을 주는 음식점 사장 역할을 소화했다. 그 멋진 모습에 지켜보는 모두가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간 여의 연습이 끝나고 모두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 주 연습을 기약했다. 극단의 이름인 ‘마냥’처럼 마냥 즐겁고 마냥 행복했던 연습 현장이었다.   

시각장애인 연극단 마냥의 시작과 성과  

마냥의 연극도 학산마당극 놀래에 올랐다
마냥의 연극도 학산마당극 놀래에 올랐다.

시각장애인 연극단 ‘마냥’은 인천 남구 학산문화원의 ‘마당예술동아리 양성 사업’을 통해 시작됐다. 마당예술동아리 사업이란, 인천 남구의 21개 동에서 각각 특색 있는 동아리를 만들어 매 해 가을 ‘시민창작예술제 학산마당극 놀래’ 라는 페스티벌을 여는 시민 참여형 문화 사업이다.

인천 남구 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
인천 남구 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
 

인천 남구 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은 “마당예술동아리는 주민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해가는 과정이다. 시각장애인 연극단 마냥의 경우 소외계층 분들을 위한 소통의 창구를 만들려는 의도로 시작됐으나, 장애인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더해져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앞으로는 마냥의 단원 분들이 장애인의 삶을 더 널리 알리는 순회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무대에서 연극 공연을 올렸던 마냥 연극단
많은 무대에서 연극 공연을 올렸던 마냥 연극단.
 

이렇듯 ‘마냥’은 학익1동을 대표하는 마당예술동아리로 시작해, 여러 축제에서 수차례 연극공연을 올렸다. 또한 단원들이 영화에까지 출연할 정도로 좋은 성과를 올린 극단으로 성장했다. 특히 배우 한지민 씨와 박형석 씨가 출연해 크게 화제가 됐던 ‘두개의 빛’이란 영화에 출연한 단원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인천 시각장애인 복지관 김호일 사무국장
인천 시각장애인 복지관 김호일 사무국장.
 

인천 시각장애인 복지관 김호일 사무국장은 “시각장애인들은 정말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연극을 통해 장애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끔 돕고 있다. 시각장애인연극단 마냥은 지난해 자신들의 사연을 담은 ‘노란 짜장면’이라는 연극을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짜장면이란 소재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노란짜장면 공연
짜장면이란 소재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노란 짜장면’ 공연.
 

김호일 사무국장이 소개한 ‘노란 짜장면’은 매우 좁은 시야만 보이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중국집에 간 주인공과 친구들이 짜장면을 주문했고, 주인공을 배려한 친구들이 짜장면 위에 단무지를 몰래 올려줬더니, 짜장면이 온통 노랗게 보여 한바탕 웃음이 피어났다는 단순하지만 감동적인 일화를 담고 있었다.

연극이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연극으로 자신감을 찾은 임순자 단원
연극으로 자신감을 찾은 임순자 단원.
 

연습이 모두 끝나고 극단 단원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연극이라는 계기를 통해 세상에 나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 듣고 싶었다.

임순자 단원은 “연극을 통해서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의 큰 성취감을 얻었다. 연극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장애인도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비장애인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내게 연극은 장애라는 벽을 허물고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연극을 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진종일 단원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진종일 단원.
 

진종일 단원은 “연극이라는 것은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평상시에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과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 단원들 모두가 연극 공연을 통해 마음속에 갇혀있던 많은 것들을 분출시켰다고 믿는다. 솔직히 연극을 하며 한 10년은 젊어진 기분이 든다. 앞으로도 이런 지원과 사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연기를 통해 숨겨진 끼를 찾은 연기파 배우 이금희 단원
연기를 통해 숨겨진 끼를 찾은 연기파 배우 이금희 단원.
 

연극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이금희 단원은 “원래 성격이 매우 소극적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하고, 겁도 많은 성격이다. 그런데 연극단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성격을 바꿔보고 싶다는 목표가 다시금 떠올라 지원하게 됐다. 연극을 통해 내 안에 이런 끼가 있었구나 하고 느꼈고 내면도 많이 밝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영화 ‘두개의 빛’에 출연한 김명원 단원.
 

단편영화 ‘두개의 빛’에 출연한 김명원 단원은 “학창시절에 연극을 했었는데 눈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면서 무대가 눈에 들어오지 않게돼 포기했다. 그런데 연극단이 생긴다고 해서 지원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실수를 할까봐 항상 위축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연극을 통해서 예전의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단원들 모두가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서로 공감하고 서로 실수를 해도 웃어넘길 수 있어서 그게 너무 좋다. 상처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한다는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마냥이란 이름처럼 마냥 행복한 연극단이 되길 바라본다
마냥이란 이름처럼 마냥 행복한 연극단이 되길 바라본다.
 

시각장애인 연극단 ‘마냥’ 단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것은, 장애인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 담긴 한 걸음을 내딛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이라는 점이었다.

훌륭한 인프라와 비장애인들의 배려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신감을 가지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더욱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길 바라본다.        



남혁진
정책기자단남혁진apollon_nhj@hanmai.net
대한민국 정책현장을 누비는 열정 가득한 정책기자입니다. 다양한 정부부처 기자단 경험과 장관상 7회 수상의 경험을 살려, 생생하고 정확한 정책기사를 작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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