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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가족과 영상통화하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평화, 일상이 되다 ②> 실향민 아버지에게 일상적인 평화란

2018.10.12

아버지는 가끔 전화를 해서 ‘요즘 사는 게 어떠니?’ 하고 묻는다. 전화 받을 때 내 기분에 따라 즐겁게 잘 지낸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살기 힘드네’ 하소연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대답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나 역시도 ‘지난번에 네가 사준 양말이 편하고 좋다’라는 인사나 ‘냉면이 먹고싶다’는 시시콜콜한 부탁을 무심하게 듣는다. 부모 자식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평안도 출신 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양냉면을 즐겨먹는다
평안도 출신 아버지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양냉면을 즐겨먹는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전화 통화는 따로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큰 딸과의 통화다. ‘용돈 잘 받았다’는 말을 언니에게 대신 전해달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언니네 식구 하나하나를 호명하며 안부를 묻고 또 묻는데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이역만리 떨어져서 사는데 어쩜 이렇게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냐고 전화할 때마다 신기해 하셨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우리 4남매를 낳고 기르셨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 살면서 힘들고 외로운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럴 때마다 북에 있는 어머니와 이런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간절히 바라셨겠지.

지난 봄부터 남북관계에 훈훈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산가족 만남의 정례화를 위한 상설면회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소하기로 남북이 합의했다. 이산가족의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 문제를 우선 해결하겠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산가족들의 평생 염원이었던 소식들이 전해지자 이산가족 당사자는 물론 온 국민이 내 일처럼 기뻐했다.

명절이 되면 아버지는 고향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곤 하신다
명절이 되면 아버지는 고향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곤 하신다.
 

그러나 아버지는 쏟아지는 뉴스에도 무관심한 척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에게는 평화롭고 행복했어야 할 일상이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전 일이다. 남한에서 평범하게 살던 아버지 친구가, 우연한 기회에 북에 두고 온 아들 소식을 접하고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북에 있는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끌려가 뺨을 수차례 맞았다고 한다. 본인은 뺨 몇 대 맞고 별 일 없이 끝났지만 북에 있는 아들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 친구는 평생토록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일을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친구와는 북한에서 초등학교와 농업학교를 함께 다녔다. 월남해서도 이웃해 살면서 형제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으니 친구이면서 형제고, 가족 같은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니 친구가 겪은 고통은 아버지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고향집에 누나가 그대로 살고있더라’ 바람결에 실려온 말도 외면했다. 고향의 아름다운 산하와 한번도 잊어본 적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누이들이 궁금했겠지만 안부조차 묻지 않는 것이 아버지에겐 최선이었다. 아버지의 애절한 속마음을 알고나니 코끝이 찡해졌다.

아버지에게는 종전선언이나 비핵화 등만으로 평화가 일상이 되긴 어렵다. 두려움 없이 마음 놓고 북에 있는 가족들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아버지의 잃어버렸던 일상을 회복하고 평화가 평범한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전쟁 걱정 없는 나라에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간절한 일상을 회복하는 일 또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최은주 tkghl22@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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