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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혜숙이에요~

[봄 여행주간 특집 ⑤] 선생님과 함께한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

2018.5.11

신록이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 4월 28일부터 5월 13일까지, 봄 여행주간입니다. 이번 여행주간 슬로건이 ‘여행이 있어 특별한 보통날’ 이라는데, 파릇파릇 돋아난 신록 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보통날 즐기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봄 여행주간에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뿐만 아니라 다양한 TV 속 여행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는데요. 어디든 한 번 발걸음을 던져보시죠.<편집자 주>

지난 여고시절을 회상하면 빛바랜 낡은 사진처럼 떠오르는 선생님이 있다. 고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늘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민낯을 하고 계셨다.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가 끝나고 필자의 반이 11개 반들 중에서 꼴찌를 했다.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긴 몽둥이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우리는 긴장된 상태에서 선생님이 주문하는 대로 책상 위에 올라가서 꿇어앉았다. 선생님은 우리 반이 꼴찌한 것은 다 당신 탓이라면서 몽둥이를 들고 당신의 손바닥을 내리치셨다. 정말 세게 서너 번을 내리치면서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이를 본 학생들이 하나둘 훌쩍이기 시작했고 교실이 울음바다로 바뀌었다. 필자에게 각인된 선생님 기억이다.

동대구역 도착
동대구역 도착.


대학에 진학한 뒤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하고 해직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졸업한 지 30여 년만에 페이스북에서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복직하신 뒤 교직에 계시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돕는 활동을 하고 계셨다.

대구에 거주하시는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생님을 모시고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를 하기로 했다. 대구 근대문화골목은 대구의 골목을 걸으며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는 체험여행이다. 대구는 6.25 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 덕분에 6.25 전쟁 이전의 생활상이 비교적 잘 유지된 편이다. 

선생님 시간에 맞춰서 6일 아침에 동대구행 KTX를 탔다. 가는 날이 하필이면 비오는 날이다. 비가 종일 내려서 시원하긴 한데 우산을 쓰고 걸어야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선생님은 비오는 날 운치가 있다며 필자를 안심시켜 주셨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서 대구 근대문화골목을 투어하면서 지난 여고시절의 추억도 도란도란 나누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문시장으로 가는 전철
서문시장으로 가는 모노레일.
 

먼저 동대구역에서 서문시장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갈아타는 전철 3호선이 공중에서 달리는 모노레일이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살펴보니 모노레일이 아파트 사이를 지나갈 때면 투명한 창문이 뿌옇게 변한다. 지역민들의 사생활을 지켜주려는 센스가 돋보인다. 서울에서 타는 지상철과 달리 공중에서 달리는 모노레일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 아찔했다.

서문시장에서 씨앗호떡을 먹고
서문시장에서 씨앗호떡을 먹고.
 

대구에서 오래된 서문시장은 드문드문 문을 열고 있었다.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는 즉석에서 만든 먹거리에 있다. 선생님이 사주신 갓 튀겨낸 따끈따끈한 씨앗호떡을 입에 물고 시장을 구경했다. 

근대문화골목투어 코스는 동산 청라언덕~3.1 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고택~교남YMCA~구 제일교회~약령시한의약박물관~마당 깊은 집~진골목~대구시간여행~화교소학교에 이르는 길이다. 걸어서 두 시간 코스다. 선생님과 걷다보면 걸음이 느려진다 해도 반나절이면 충분하겠다.

계성고등학교 본관
계성고등학교 본관.
 

서문시장을 벗어나니 계성고등학교가 보였다. 오래된 학교여서 건물들 일부가 개화기에 지어진 근대식 건축물이었다. 목조건물에서 벗어나 빨간 벽돌, 길쭉한 유리창 등으로 지은 모더니즘 양식이다.

건물의 빨간 벽돌을 에워싸고 있는 초록 담쟁이 덩굴이 건물 전체를 덮을 기세로 올라오고 있다. 빨강과 초록, 색의 대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산 청라언덕
동산 청라언덕.
 

동산 청라언덕은 “봄의 교향악이 울러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 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라는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그 지명이다. 선생님을 따라서 필자도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동산 선교사 주택들
동산 선교사 주택들.
 

개화기부터 대구에 기독교를 확산시킨 선교사들의 집이 현재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요일 휴관이어서 아쉬운 대로 건물과 뒷마당을 구경했다. 

3.1만세운동길
3.1 만세운동길.
 

청라언덕에서 평지로 내려가는 계단이 3.1 만세운동길이다. 90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계성, 신명을 위시한 인근 학교의 학생들이 모여서 이곳을 지나 집결지 큰장터로 행진했다.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고 큰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양쪽 벽면에 내걸린 태극기들 사이로 그 시대의 낡은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좌)계산성당, (우)구 제일교회
(좌)계산성당, (우)구 제일교회.
 

길 건너 계산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미사가 시작되기 전일까? 문이 열려 있는 성당 안에 들어가니 엄숙한 분위기에 여행으로 들뜬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이상화 고택으로 가는 길
이상화 고택으로 가는 길, (위)태극기, 이상화와 서상돈 (아래)바닥에 새겨진 이상화의 시.
 

오락가락하는 세찬 빗줄기에 가방과 어깨가 흠뻑 젖었다. 오후 1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다. 이상화 고택으로 진입하는 대로변 바닥에 이상화가 쓴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새겨져 있다.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시를 읽다보면 어느 새 이상화 고택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다.    

골목 입구에 새로 문을 연 한정식집이 있었다. 선생님이 추천하신 음식점이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여고시절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니 그땐 교사로서 미숙했다면서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신다. 머리는 희끗해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이시다.

(위)이상화 고택 (아래)서상돈 고택
(위)이상화 고택 (아래)서상돈 고택.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저항시인 이상화 고택, 일제에 진 나라의 빚을 갚겠다면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 고택이 나란히 이웃하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일제강점기 전후의 암울하기만 했던 시대,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이었지만,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교남YWCA
교남 YMCA.
 

약령시장으로 접어드니 한방축제로 시끌벅적하다. 교남 YMCA는 지나는 길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아담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기독교 민족운동의 집결지였던 역사적 장소이다. 

건너편에 구 제일교회가 있다. 청라언덕에는 신축한 제일교회가 있다. 계산성당, 제일교회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여서 이곳에 선교사가 거주하는 집들이 모여 있었다. 

한방박물관과 족욕 중인 사람들
약령시한의약박물관 내부와 족욕 중인 사람들.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앞 너른 마당에는 한방축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약재 달인 물에 발을 담그고 족욕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구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한약재 전문 시장인 약령시장이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향긋한 한약 냄새가 난다. 입에는 쓰고 몸에는 좋은 한약이다.

약재의 종류는 동, 식물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간이 잔인해 보이지만, 영양실조와 질병을 달고 살았던 과거엔 몸에 좋다라고 한다면 뭐든 섭취했으리라.

문득 전기약탕기가 없었던 시절,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서 약탕기에 한약재를 넣고 부채질하면서 달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정성이 한약의 효험을 더했다.

2년 뒤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신 선생님은 학교에서 젊은 교사들을 보면 점점 자신감이 줄어든다고 하셨다. 솔직한 선생님의 말씀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비단 선생님뿐만 아니라 노년기에 접어드는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선생님은 은퇴하신 뒤 현재 고령에 짓고 있는 전원주택에서 지낼 계획을 갖고 계셨다. 나중에 고령으로 놀러 오라고 하시면서 기꺼이 숙소를 제공해 주겠다고 하셨다.(선생님! 빈말이 아니시겠지요?) 

마당깊은 집
마당 깊은 집.
 

‘마당 깊은 집’은 소설가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 제목이다. 6.25 전쟁 직후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이 아웅다웅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각종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집은 현재 음식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진골목
진골목.
 

진골목은 긴 골목이라는 뜻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길다’를 ‘질다’라고 한다.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골목은 구불구불 예전 그대로이건만, 그 골목길 주변 풍경은 세월과 함께 달라졌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그곳에 있어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인간의 욕심이겠지.

화교소학교
노란 건물은 화교소학교, 붉은 벽돌건물은 화교협회.
 

진골목을 벗어나니 왼쪽 저 멀리 화교소학교와 화교협회가 보인다. 낡은 건물 외관이 독특해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학교도, 운동장도 작고 아담하다.

현재 화교 학생들의 학교로 수업을 받고 있다. 화교는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으로 그들은 중국을 떠나서 타국에 이주하여 살아가고 있다. 화교가 다니는 학교가 있으니 이 근처에 오래된 중국집이 있지 않을까?    

비오는 길을 거닐면서 필자는 두 손으로 사진을 찍느라 우산을 쓰지 못했다. 대신 선생님이 우산을 받쳐주셨다. 선생님이 일러주시는 대로 걷다보니 길을  헤매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서 수시로 들여다보건만, 필자는 초행길이어서 사방을 분간키 어려웠다.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 스탬프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 스탬프.
 

가는 길마다 끝나는 지점에 스탬프가 놓여 있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걷기 위해서 스탬프를 찍기로 했다.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 임무 완수다. 시간을 따져보니 점심시간을 빼고 꼬박 4시간이 걸렸다.

향촌문화관 내부
향촌문화관 내부.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는 끝났다. 내친 김에 향촌문화관으로 갔다. 1, 2층에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에 나올법한 거리, 상점 풍경이 재현되어 있었다. 6.25 전쟁 직후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의 대구 길거리 풍경이다.

그 시절을 겪지 않았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신기한 듯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젊은 그들에게 박제된 전시물로 남아 있는 과거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나이든 사람들에겐 과거의 향수를, 젊은이들에겐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공간이다. 지하 1층 음악다방까지 둘러보니 서울행 KTX 시각이 가까워졌다. 

대구 오래된 골목길
대구 오래된 골목길.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가끔 세찬 빗줄기에 곤혹스럽기도 했지만, 선생님과 나란히 걷는 근대로의 여행은 지루하거나 힘들 틈이 없었다. 환갑을 넘긴 연세에도 건강하셔서 오히려 필자가 선생님을 쫓아가느라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구 골목투어는 5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두 번째 코스인 근대문화골목길을 걸었다. 다음에 시간을 정해서 선생님과 나머지 코스들을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그때까지 지금처럼 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오늘의 사제동행 투어를 마쳤다. 

여고시절엔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 라는 가르침에 교정을 오가면서 눈도 마주치기 어려웠던 선생님이었다. 지난 30여 년 세월이 사제지간의 높은 벽을 허물게 했다.

선생님과 나란히 반나절 가량 대구 근대문화골목투어를 하면서 선생님과 한층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과거 여고시절의 추억을 얘기할 수 있어서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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