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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허브’였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공주, 부여 현장 탐방기

2017.11.15

삼국시대 나라들 중,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는 아마 신라일 것이다. 수많은 초등학교들이 신라의 수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동전에는 신라의 탑이 새겨져 있으며, 심지어 유명한 영화, 대중가요 제목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백제는 어떤 이미지인가. 삼국시대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작고 초라한 국가로 인식하는 건 아닌가. 백제 전성기를 만들었던 근초고왕보다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과 3천 궁녀 이야기를 더 떠올리지 않는가. ‘신라의 달밤’은 알아도 ‘꿈꾸는 백마강’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듯 말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
백제역사유적지구.
 

그렇지만 이러한 편견은 2015년 7월에 깨졌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백제문화의 인류문명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동아시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찬란한 백제 문화를 세계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백제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지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프로그램은 2017년 마지막 탐방지로 백제 수도 공주(웅진), 부여(사비)를 택했다.  

무령왕릉에서 여러 나라들의 문물들이 나온 이유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 송산리 고분군.
 

백제 22대 문주왕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한성(서울)이 함락되자, 웅진(공주)으로 천도했다. 이후 웅진은 사비(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 간 백제의 도읍지였다. 송산리 고분군은 웅진시대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사적 제13호인 송산리 고분군은 현재 무령왕릉을 포함한 7기 고분이 있다. 1~5호분은 백제 전통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다. 벽돌무덤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으로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적극적으로 중국문화를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일행과 동행한 공주대 이해준 교수는 “송산리 고분군이 중요한 이유는 남한 유일의 벽돌무덤(전축분)이고, 남한에 둘 밖에 없는 백제시대 벽화고분이다.(나머지 하나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라면서 “중국 남조에도 이런 형식을 볼 수 있어서 두 나라 사이 교류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설명하는 이해준 교수.
송산리 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이해준 교수.
 

송산리 고분군 중, 가장 핵심은 단연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무덤의 주인, 구조, 축조시기, 부장품, 장례절차까지 정확히 기록된 고대 동아시아 유일한 왕릉이다. 1971년 7월, 5호분과 6호분에 스며드는 물기를 막기 위한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발견 당시, 신문 1면에 나올 정도로 특종이었고 기념 우표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12시간 만에 빠르게 무령왕릉 발굴을 끝냈다는 점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발굴 역사 중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무령왕릉은 섬세하고 우아한 아치형의 벽돌무덤으로 벽돌에 연꽃문양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등잔으로 사용된 백자는 동아시아 최초의 백자로 추정되고 있다. 무령왕릉이 더욱 주목받은 것은 무덤 앞에 놓여 있던 지석(誌石)이었다. 이것은 삼국시대의 여러 왕릉급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발견된 것으로 무덤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였다.

왕의 지석에는 묘지와 방위도가, 왕비의 지석에는 묘지와 매지권이 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백제 무덤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대부분 도굴됐지만 이곳은 그들의 손길을 피했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높았다.

무령왕릉 내부에는 다양한 해외 문물들이 있었다.
무령왕릉 내부에는 다양한 해외 문물들이 있었다.
 

무령왕릉은 백제가 왜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는지를 알려준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종 4,600여 점 이상에 이른다. 그중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들여온 부장품들이 다수 발견됐다. 무령왕과 왕비가 있던 목관은 일본산 금송으로 만들어졌다. 금송은 일본 왕과 귀족의 관 제작에 쓰인 고급 목재다. 중국 양나라 청자와 오수전(중국에서 제조된 동전)도 볼 수 있었고 동남아시아산 주황색 유리구슬도 출토됐다.

이해준 교수는 “무령왕릉을 통해 활발한 해외 교류로 웅진에서 제2의 중흥기를 맞이하려는 백제의 모습과 고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흐름까지 엿볼 수 있다. 백제가 얼마나 글로벌한 국가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송산리 고분군 5호분과 6호분, 무령왕릉은 모형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공산성에서 발견된 옻칠 갑옷의 정체

웅진시대 왕성, 공산성.
웅진시대 왕성, 공산성.
 

사적 제12호 공산성은 총 길이 2,660m로, 해발 110m에 위치해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북쪽은 금강이 흐르는 방어용 산성으로,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석성(石城)으로 개축됐다. 공산성은 64년 웅진시대 왕성 역할을 했다.

공산성이 독특한 점은 산성 안에 왕궁시설을 둔 것이다. 공주 시가지가 보이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왕궁지는 큰 건물터와 연못터, 목곽 저장시설 등 각종 유물들이 나와 백제왕실의 생활문화를 알 수 있다.

이해준 교수는 “이곳이 왕궁지이긴 하지만 왕이 거처하는 곳보다는 별장 역할이나 손님 대접하는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제2의 중흥기를 꿈꾼 백제 웅진시대를 생각하면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공산성은 백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속에 여러 번 등장했다. 임재준 충남문화관광해설사는 “통일신라 김원창의 난, 고려 망이·망소이의 난의 본거지가 이곳이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이괄의 난이 일어난 시기에 조선 제16대 인조가 피난처로 온 곳이기도 했다. 이때, 인절미가 유래되기도 했다.”라며 공산성에 얽힌 이야기들을 설명했다.

공산성은 금강과 맞닿아 방어하기 편리한 ‘천혜의 요새’다
공산성은 금강과 맞닿아 방어하기 편리한 ‘천혜의 요새’다.
 

공산성은 왕성답게 화살촉, 철제 무기류 등 다양한 유물들이 나왔다. 특히, 2011년 10월에 기념비적인 유물을 발견했다. 공산성 내 마을 저수지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옻칠 갑옷이었다. 가죽에 10여 차례 이상 옻을 덧바른 갑옷은 삼국시대 최고 사치품이었다. 30여 년 넘게 발굴을 지속한 끝에 얻은 쾌거였다.

갑옷 조각 위로 빨간색 글씨가 선명했다. 앞면에는 ‘貞觀’, 뒷면에는 ‘十九年四月卄一日’. 정관 19년 4월 21일. 정관은 백제를 멸망시킨 당 태종의 연호로, 19년은 서기 645년(의자왕 5년)이다. 문헌 기록이 매우 부족한 고대사에서 연대가 적힌 명문인 것이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여러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해준 교수는 “백제는 간지(干支)를 사용했기 때문에 당나라군이 입었던 갑옷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편에는 백제가 바다를 통해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입증하는 문물로 보는 의견도 있다.”라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삼국사기’다. 책에는 ‘645년 5월 당군이 요동성을 함락했을 때 백제가 금색칠을 한 갑옷과 검은 쇠로 무늬를 놓은 갑옷을 만들어 바쳤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정관 19년과 시기도 비슷하다. 백제가 왜왕에게 하사한 칠지도에 중국 연호가 새겨진 사실을 보면 옻칠 갑옷이 외교용 문물이라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

사비시대의 중심, 정림사지

정림사지에 대해 설명하는 이해준 교수.
정림사지에 대해 설명하는 이해준 교수.
 

538년, 백제는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했다. 제26대 성왕은 백제 국가부흥과 재도약의 발판이 될 새로운 땅을 찾았다.

백마강과 광활한 평야가 있는 부여를 선택했다. 서해로 연결되는 수운 확보와 해외 진출에 유리한 개방 입지까지 충족한 부여는 백제의 새로운 계획도시로 발돋움했다. 관북리유적(왕궁터), 부소산성(후원 겸 도성 방어), 정림사지(사찰), 나성(도시 외곽성), 능산리 고분군(왕과 귀족의 무덤)이 사비시대를 나타낸 증거다. 

인문열차 일행은 공주에 이어 부여로 이동했다. 사비의 중심부에 위치한 정림사지는 사비시대에 건립된 평지 사찰이다. 남북 직선 축을 따라 주문, 탑, 금당, 강당이 일직선에 놓여진 1탑 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가람배치를 보여준다. 백제 중흥의 염원이 담겨 있는 이곳은 동아시아 평지 사찰의 건축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백제시대 불교와 관련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다. 그런데 그중 흙으로 빚어 구운 도용들은 무인상, 문인상 시녀상 등으로 추정되는데, 중국 육조 풍의 관모를 쓰고 있거나 이국적인 두발을 하고 있어 백제의 국제적인 문화교류가 활발했음을 짐작케 했다.

정림사지 5층 석탑 정면과 탑으로 가는 길은 일직선이 아니다.
정림사지 5층 석탑 정면과 탑으로 가는 길은 일직선이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림사지 5층 석탑이다. 국보 제9호인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 석탑이 목조탑의 번안(飜案)이라는 근거를 보이는 점에서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신라의 석탑과 달리 좁고 낮은 단층기단과 배흘림수법, 옥개석의 형태 등 백제 석탑만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정림사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 변형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탑의 정면과 석탑으로 향하는 길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해준 교수는 “건립됐을 때는 일직선으로 되었을 것이다. 현재는 유물 발굴과 기록을 통해 길이 만들어졌지만 여러 시대를 거쳐 처음과 많이 다른 형태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금동대향로에는 백제문화 교류의 비밀이 숨어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사비시대를 설명하는 이해준 교수.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사비시대를 설명하는 이해준 교수.
 

마지막으로 백제 사비시대 유물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충청남도의 선사와, 고대 문화부터 백제 사비시기의 문화, 백제의 불교문화 등으로 나눠 관람할 수 있다. 

수많은 백제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백제 금동대향로다. 국보 제287호인 금동대향로는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쪽 절터에서 진흙 속에서 발견됐다. 이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이 사비시대 백제 왕릉이라는 점을 재확인 시켜준 사건이었다.

조형미가 빼어나 균형과 조화가 완벽한 작품으로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꼭대기에는 상서롭고 고귀한 상상의 새인 봉황이, 받침에는 힘차게 솟아오르는 용이 있다. 

이해준 교수는 “백제인들이 생각하는 이승과 미래세계를 표현한 집약체다. 금동대향로에 향을 피우면 연기가 그냥 날아가지 않고 구멍을 통해 향로에 새겨진 산을 타고 돈다. 마치 봉황이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대표적인 유물이자 문화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대표적인 유물이자 문화다.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허브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다. 60여 마리 동물, 10여 종류 식물, 30여 명 사람이 조각돼 있는 금동대향로에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새겨져 있다.

사람이 타고 있는 코끼리를 비롯해 악어, 낙타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동물들이 있는 것이다. 코끼리에 대해 백제인들은 상상속의 동물이 아닌 운송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동대향로는 백제가 활발한 해외 교역을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인문열차를 다녀온 후, 느낀 점을 적는 사람들.
인문열차를 다녀온 후, 느낀 점을 적는 참가자들.
 

엄마와 함께 인문열차 프로그램에 참여한 최홍우(이현중 2년) 군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여러 백제 유물들을 보면서 찬란했던 문화를 경험해 좋았다. 더구나 이해준 교수님의 이야기와 함께 들으니 더 생동감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라며 흡족해했다. 

이동고 씨는 “무령왕릉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갔으면 감동이 쉽게 오지 않았을텐데 교수님 설명도 듣고 모형전시관을 통해 무령왕릉을 접하니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이해준 교수는 “백제는 신라와 달리 투박하지만 자연미를 가진 나라다. 세계적인 교역을 활발히 진행해 여러 나라들에 백제의 위상을 떨쳤다. 열린 국가로서의 위용을 뽐냈다. 그런 백제의 숨결들을 나중에 개인적으로 찾아서 천천히 둘러보길 바란다. 지금과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들을 글로 적어보는 걸 추천한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하면 금방 잊지 않고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2017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마지막 탐방.
‘2017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마지막 탐방.
 

‘開眼(개안)’ 개인적으로 백제에 새롭게 눈을 뜬 시간이었다. 대항해시대를 떠올린다면 15세기 후반 유럽을 생각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6세기 웅진, 사비시대 백제의 국제교역은 그에 못지 않을 것 같다. 이처럼 동아시아 수많은 나라들과 직접 교류했다는 것은 바닷길도 알아야 하고 국제적 수준의 조선술까지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백제의 위용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은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불린다. 그렇다면 백제는 ‘고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허브’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백제를 연구하는 발걸음은 지금도 계속 된다. 그리고 일제에 도굴됐던 백제 문화재 반환도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백제의 매력, 지금부터라도 편견 없이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때다.

‘돌도 응당 원통한 느낌이 있으련만은 어찌 말 한마디 없이 이제까지 서서 보고만 왔단 말인가. 날 저무는 부여는 점점 어두워만 간다’ - <고적을 찾아서> 中 -



김진흥
정책기자단김진흥chamomile5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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