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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렸던 그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까지

<광복 73주년 ①> 서울 시내 곳곳에서 찾아본 독립운동의 발자취

2018.8.13

올해는 광복 73주년이다. 그리고 내년은 3.1운동이 일어난지,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지 100년이 되는 해다. 

1919년 3월 1일. 각 종교인들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직접 경찰서로 간 일화는 유명하다. 이들은 3.1운동이 폭력시위로 변질될 것을 우려하여 본래 모이기로 한 장소였던 탑골공원으로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탑골공원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선언문 낭독이 이루어졌고 이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학생들은 서울에서 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이 이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독립을 외치게 했을까. 그 답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려보기 위해 위해 승동교회에서 출발해 탑골공원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를 찾았다.

3·1 독립운동 기념터로 지정되어 있는 승동교회
승동교회는 3.1독립운동 기념터로 지정되어 있다.
 

먼저 승동교회를 찾았다. 탑골공원과 걸어서 5분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태화관 터는 알아도 승동교회는 잘 알지 못한다. 3.1독립운동 기념터로 지정되어 있는 승동교회는 입구에서부터 승동교회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을 설명하고 있어, 사뭇 비장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승동교회와 관련한 역사적 인물들
승동교회와 관련한 역사적 인물들을 알 수 있다.
 

이곳 승동교회에서 학생들은 독립에 대해 논의를 하고 그 방안을 고심하였으며, 3.1독립운동 때 배포할 태극기나 독립선언서를 준비했다. 3.1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본거지 역할을 했던 승동교회는 이로 인해 일본 경찰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하는 등 학생들과 비극을 함께 겪어냈다.

탑골공원 입구의 3·1 운동 기념비
탑골공원 입구 3.1운동 기념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탑골공원이다. 탑골공원은 그 입구부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서 오지 않을 민족대표를 기다리다 학생 한 명이 나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이것을 시발점으로 운동은 시작됐다.

몇 해 살지 못한 목숨이 사라지는 게 두렵지는 않았는지, 여생이 아깝지는 않았는지 물었고, 그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33인의 민족대표 중 한 명이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
탑골공원에는 33인의 민족대표 중 한 명이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한적한 탑골공원의 정자
한적한 탑골공원의 정자.
 

이제는 학생, 청년들이 찾지 않는 탑골공원에는 어느 여름 낮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들이 한적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의 전경
서대문형무소 전경.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서대문형무소였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민족대표 33인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던 수많은 인사들이 이곳으로 끌려와 고초를 당했다.

이 시기 서대문형무소 수감 인원만 3천여 명에 육박할 정도였고 이에 일제는 서대문형무소의 옥사를 대대적으로 넓혀나갔다고 한다. 

내부에 실제감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내부에 실제감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역사길라잡이 선생님들의 설명을 많은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이를 듣고 있었다. 학생들이 무엇을 느꼈을까? “방학 숙제 때문에 오기는 했지만, 역사를 알게돼 보람찬 시간이었다” 라고 답하고 친구들에게 돌아가는 한 학생의 미소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희생한 조상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독립서언 기념탑
독립선언 기념탑.
 

마지막으로 독립선언 기념탑을 보며 하루 동안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는데 한 일본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 일본 관광객을 보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과거 역사에 점점 더 무뎌지는 우리들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독립운동을 하는데 나이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필요했던 것은 굳은 신념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광복 73주년을 맞고 있다. 




김지효
정책기자단김지효khyna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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