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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국민기자단인 정책기자단이 취재해 작성한 것으로, 정부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 속 ‘한글’을 느껴보다~

[한글날 특집 ①] 간송옛집, 주시경 마당 등 한글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현충일, 광복절, 3.1절, 개천절 등과 함께 5대 국경일 중 하나이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가볍게 넘어가는 공휴일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글’은 오롯이 한국인으로서 살아낼 수 있었던 도구이자 수단이었습니다. 한글 덕분에 우리 한민족의 정서를 우리들의 고유한 문자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한글날만큼은 한글에 대한 감사함,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편집자 주>

우리 민족의 생각과 정신을 말과 글로 풀어내게 도와주는 ‘언어’라는 수단은 그 나라의 혼이며 정신이다. 한글이라는 문자가 보존되지 않았으면 과연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글날을 맞아 지금의 한국어가 있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훈민정음을 지켜냈고 한글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보게 되었다. 한국어 교육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형 정책기자와 8년 전,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너무 좋아하게 되서 한국어에 푹 빠진 베트남 청년, 이진용(25, 한국어 교육 석사과정) 씨다.

좋아하는 나라를 알아가는 첫 걸음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너무나도 좋다는 이진용 씨의 말을 들으며 필자도 가슴이 뛰었다. 사전에 탐방 일정에 대해 설명한 후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준 간송 전형필 선생의 ‘간송옛집’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과 간송옛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간송옛집은 도봉구청의 지원과 관리를 받고 있다.
간송 전형필 선생과 간송옛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간송옛집은 도봉구청의 지원과 관리를 받고 있다.
 
간송옛집의 처마 아래 앉아 선생의 업적을 나누고 있는 임세훈 기자(좌), 이진용 씨(가운데), 전형 기자(우)
간송옛집의 처마 아래 앉아 선생의 업적을 나누고 있는 임세훈 기자(좌), 이진용 씨(가운데), 전형 기자(우).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인 간송옛집은 성북동 북단장 한옥이 소실되고 종로 본가 또한 재개발로 모두 사라진 현재 간송 선생이 거주했던 유일한 곳이다. 선생의 묘역도 함께 남아있어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고 100여 년이 된 전통한옥으로서의 건축적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간송 선생은 특히나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키고 보존한 일화로 유명하다. 사전에 설민석 강사가 다룬 훈민정음 강의를 듣고 온데다 간송옛집 문화해설사의 설명까지 더해지니 막힘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당시 1,000원(기와집 한 채)이었던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1만1,000원이나 주고 구한 간송 선생의 일화를 나누던 전형 기자는 “후손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아.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우리의 문화를 잘 지켜주셔서 우리가 문화적 수혜를 받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이진용 씨는 “6.25 전쟁 당시 베개 속에 해례본을 넣고 잠자고 이동할 땐 가슴에 품어가며 지켜낸 간송 선생의 희생이 인상깊었다.”라며 소회를 남겼다.

간송 선생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글이 몽고의 문자에서 나왔다느니, 창살무늬에서 나왔다느니 말도 안 되는 논란들을 일축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간송 선생은 우리의 문자를 지키는 게 민족의 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럼 우리는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간송옛집의 실내는 개방일 10시, 15시에 해설사와 함께 들어갈 수 있다. 간송 선생이 지켜낸 또 다른 문화재인 김홍도의 황묘농접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간송옛집의 실내는 개방일 오전 10시, 오후 3시에 해설사와 함께 들어갈 수 있다. 간송 선생이 지켜낸 또 다른 문화재인 김홍도의 황묘농접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도봉구 역사문화관광벨트 스탬프수첩에 ‘간송옛집’ 방문인증을 받았다. 김수영문학관과 연산군묘가 근처에 자리 잡아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도봉구 역사문화관광벨트 스탬프 수첩에 간송옛집 방문인증을 받았다. 김수영문학관과 연산군묘도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더욱 더 궁금해졌다. 우리 문자의 시발점인 훈민정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훈민정음, 난중일기 展 : 다시, 바라보다’ 전시회(~10월 12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회에선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난중일기’의 영인본 및 그 외 유물 2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문자 구성 원리를 설명한 세계 유일한 책 ‘훈민정음’과 전쟁 중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전장 기록물 ‘난중일기’, 그리고 현대적으로 시각화한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이진용 씨는 “지금까지 공부하며 보지 못했던, 사라진 문자들을 확인할 수 있어 신기했다.”라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태국어,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안타깝다. 한국어는 모음, 자음체계가 있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 배우기 쉬운데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확대 전시해놓았다. 감각적인 전시공간이 인상깊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확대 전시해 놓았다. 감각적인 전시공간이 인상깊었다.
 
김형규 감독의 작품인 ‘진심의 대화’을 시청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우리의 역사와 민족을 생각한 마음을 랩으로 표현했다.
김형규 감독의 작품인 ‘진심의 대화’를 시청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우리의 역사, 민족을 생각한 마음을 랩으로 표현했다.
     

전시실 각 공간별로 디자인 요소를 다채롭게 활용한 점이 인상 깊었다. 필자가 좋았던 공간은 세종대왕의 유물들을 만나러 가기 전, 지금을 사는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지 잠시 생각에 젖어보는 곳이었다.

세종대왕이 창제하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문자생활의 사치라고 부를 만큼 훌륭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에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이 점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는 기획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은 후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국정운을 살펴봤다.

전형 기자와 이진용 씨는 10여 분 동안 눈을 떼지 않고 훈민정음을 지켜봤다.
전형 기자와 이진용 씨는 10여 분 동안 눈을 떼지 않고 훈민정음을 지켜봤다.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 유일본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장은 광화문의 세종대왕상이 펼치고 있는 장과 같다.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 유일본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 자모글자 내용, 해설을 묶어 만든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세종대왕은 한자가 우리말과 다른 글자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배워 사용하기 어려운 사실을 안타까워해 우리말 표기에 알맞은 문자를 완성하고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란 뜻으로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현재 전시 중인 유물은 유일본으로 1940년 경북 안동의 고가에서 발견된 것을 전형필 선생이 수장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려한 글씨로 정교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됐고 사용된 종이나 먹도 우수하여 당시 출판문화의 우수함이 드러나 있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은 오늘날까지 자형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으나 이 책의 자형이 가장 초기의 모습이다.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글과 같이 독창성과 과학성을 갖춘 새 문자를 만들어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일은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다. 새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더욱 그렇다.

8년 전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웠던 이진용 씨는 “오늘 이렇게 뜻깊은 곳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직접 볼 수 있어 영광이다.”라며 감탄을 자아냈다. 이 말을 들으니 많이 부끄러웠다.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음 접하기는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민석 강사는 이번 전시를 맞아 훈민정음 특별해설강의를 준비했다. 우리 일행도 사전에 강의를 통해 공부했다.
설민석 강사는 이번 전시를 맞아 훈민정음 특별해설강의를 준비했다. 우리 일행도 사전에 강의를 통해 공부했다.


전시실 끝자락엔 간송 전형필 선생의 모습도 담겨 있다. 필자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전시실 끝자락엔 간송 전형필 선생의 모습도 담겨 있다. 필자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위대한 위인과 유물 앞에서 숙연해진 우리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평생을 바쳐 한글을 갈고 닦고 보급하였으며 한글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주시경 선생을 기린 주시경 마당이다. 이곳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헐버트 박사도 있다. 한국어를 좋아하는 외국인 유학생과 함께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헐버트 박사를 찾으니 기분이 색달랐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1892년 한국소식에 ‘한글’이라는 제목으로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썼다. 1903년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협회 보고서에 쓴 ‘한국어’란 글에서 “영어보다 한국어가 우수하다.”라고 소개했다. 그 밖에 국내외 학술지와 신문, 그의 저서에 여러 차례 한글과 한국어의 훌륭함을 영문으로 소개했는데, 이 글들은 한글과 한국어 세계화의 첫걸음이었다는데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

헐버트 박사의 글 중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이 위대한 한글은 노예해방이나 다름없는 문맹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왔음에도 한국인들이 한글이 주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조선 공문서를 한자로만 쓰는 것을 안타까워한 부분이다.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헐버트 박사.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헐버트 박사.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리라.’ 주시경 선생의 말씀이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리라.’ 주시경 선생의 말씀이다.
     

주시경 선생은 ‘힘이 있는 자는 힘으로,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머리가 있는 자는 머리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노력하듯 한글 연구와 보급으로 역사적 과제 해결에 헌신한 분이다. “우리나라의 말과 글을 강구하여 이것을 고치고 바로잡아, 장려하는 것이 오늘의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라고 생각한 주시경 선생.

주시경 선생의 말모이 원고와 국어문법(1910년) 원고는 주시경 선생 제자들이 일제강점기 때 만든 조선말큰사전 원고와 함께 2012년에 대한민국 국가문화재로 등록이 됐다. 이미 100여 년 전에 한글로만 글을 쓰고 우리말본과 말모이(국어사전)를 만든 것은 선구적 업적이다.

우리 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 앞에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는 정책기자 (가운데)와 베트남 유학생 이진용 씨(우)와 함께 해서 뜻깊은 동행이었다.
우리 민족의 스승인 세종대왕 앞에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는 정책기자 (가운데)와 베트남 유학생 이진용 씨(우)와 함께 해서 뜻깊은 동행이었다.
 

주시경 선생이 1908년에 제자들과 함께 만든 국어연구학회(한글모)는 오늘날 한글학회로 이어지고 조선어강습원(한글배곧)에서는 최현배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오늘날 한글이 나라글자가 되도록 그 토대를 마련하는데 주시경 선생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글학회 덕분에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을 펼칠 수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1945년, 광복이 되자마자 간송 선생은 한글학회 간부들을 보화각(간송미술관)으로 불러 ‘해례본’의 존재를 공개하고 이듬해인 1946년, 한글학회를 도와서 한글연구를 위한 최초의 ‘영인본’을 출판했다.

훈민정음을 창조한 세종대왕과 이를 전승한 간송 전형필 선생, 한글 보급에 힘쓴 주시경 선생까지 발자취를 밟아보았다. 오늘 하루를 쭉 정리해보니 ‘한글’과 관련된 역사 속 인물들과 역경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진용 씨는 “오늘 정책기자 두 분 덕분에 정말 알차게 보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 한글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며 마음을 전했다.

우리의 문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던 필자는 문자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하루였다.



임세훈
정책기자단|임세훈@global_lim@naver.com
민주적인 나라가 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201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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