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던 날. 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게 꿈이 생기게 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지난 8년간 꾼 꿈이었다. 그리고 2016년과 2017년 치열한 과정을 거쳐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었다. 그리고 전 세계인이 주목한 그 무대에 ‘패션 크루(Passion Crew)’의 한사람으로서 2월 2일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올림픽 자원봉사자라 해서 늘 화려한 순간만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경기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궂은 일을 맡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몇시간 동안 야외에서 떨어야 했다. 나 역시 매일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 눈도 제대로 못뜨고 출근했던 시간들이 지금 이순간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하지만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그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라는 자부심과 ‘자원봉사자’로서의 책임감과 열정이었다.
4대 대회 그랜드슬램 달성!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황보순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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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순철 씨는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세계 4대 대회 자원봉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
보통 스포츠계에서는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4대 대회를 모두 개최하게 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제대회의 역사와 함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황보순철 씨다. 황보순철 씨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등 숱한 국제대회에서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다. 매번 행사를 마친 후 남게되는 유니폼과 AD카드(출입카드)는 그에게 있어 자부심임과 동시에 멋지게 살아온 인생의 증거다.
필자는 같은 베뉴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황보순철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던 황보순철 씨는 “혹시 내가 젊은 사람들의 자원봉사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대회 참여를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자원봉사 면접관으로부터 “젊은 친구들에게 그 경험을 전해주는 일을 하라!”라는 말을 듣고 대회에 참여하게 됐고 대회기간 중에도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고 크고 작은 문제 상황이 있을 때마다 발 벗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등 함께 근무하는 자원봉사들의 좋은 멘토로써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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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까지, 황보순철 씨가 수집한 자원봉사 AD카드. |
황보순철 씨는 대회를 끝마치며 “이번 대회로 4대 대회 자원봉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데 몇몇 학생들이 박수로 축하해줬다. 그 박수소리의 행복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를 통해 배운 것처럼 앞으로 이런 스포츠분야 자원봉사에서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20대를 시작하는 당찬 소녀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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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C(유니폼 배부 및 등록 센터)의 비타민 역할을 한 당찬 막내들, 이지우(왼쪽, 20), 천은진(20) 씨. |
“아리아리~!”
UAC(유니폼 배부 및 등록 센터)에 활기찬 인사 소리가 울려퍼졌다. UAC의 가장 막내들인 천은진(20) 씨와 이지우(20) 씨는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공식인사인 “아리아리!”를 연신 외쳐대며 AD카드 발급을 위해 UAC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겼다.
외국인들은 좀처럼 듣기 힘든 자원봉사자 공식인사를 듣자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UAC의 분위기 메이커인 막내들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었다.
갓 스무살이 된 천은진 씨와 이지우 씨는 화려한 20대를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로서 활동했다. 자원봉사자 선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두 친구는 고3이라는 바쁜 상황에서도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 면접을 보러다니는 등 올림픽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다.
외국인과 세계축제에 관심이 많았던 두 친구는 면접에서 그런 부분들을 강조했고 평창동계올림픽의 자원봉사자가 됐다.
두 친구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 뿐만아니라 시니어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서스럼없이 다가가며 UAC의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한 UAC에 방문하는 외국인들마다 웃는 얼굴로 맞으며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다. 두 친구는 패럴림픽에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며 세계인이 함께하는 축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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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그리고 열정으로 똘똘 뭉쳤었던 지난 23일간의 자원봉사 기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나는 2월 2일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다. 등록부 베뉴를 배정받은 나는 사람들에게 출입권한을 부여하는 일을 맡아, 작은 힘이나마 대회 운영이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도왔다.
처음 등록부에 가서 업무를 하나씩 배워나가던 순간. 실수했던 순간. 아침 출근을 위해 숙소 밖을 나서 새벽공기를 맞았던 순간. 쉴틈없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바빴던 순간. 그리고 영하 20도의 날씨에 추위에 떨었던 그 순간까지.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그리고 열정으로 똘똘뭉쳤었던 지난 23일간의 자원봉사 기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별이 익숙해져가는 23살이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떠나보내니 눈시울이 붉혀진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제 추억으로 남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제 누군가는 자원봉사의 신분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평범한 대학생으로, 또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패럴림픽을 위해 남은 열정을 쏟을 것이다.
‘한 겨울밤의 꿈’ 같았던 평창동계올림픽은 끝이 났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훗날 화려했던 2018년의 어느 날을 떠올리며 미소짓고 있을 미래를 그려본다.
안녕, 평창 2018! 고마웠어, 평창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