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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고향, 벌교를 달리다!

2018 마지막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보성·여수 탐방기

2018.11.15

지난 11월 10일, 순천역으로 향하는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올해의 마지막 탐방열차(1박2일)에 동행했다. 이번 탐방지는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보성(벌교읍)과 여수였다. 다음 날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필자는 ‘태백산맥’ 속 한 인물로 빙의가 된 채 고향을 등지고 먼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마음이 허허롭기까지 했다.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는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코레일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마지막 탐방은 ‘우리 민족이 살아온 길과 나아갈 길’ 이란 주제로 60여 명의 탐방객과 동국대 국문학과 한만수 교수가 인문학자로 동행했다.           

 인문 열차에 동행한 동국대 국문학과 한만수 교수의 소설
인문열차에 동행한 동국대 국문학과 한만수 교수가 소설 ‘태백산맥’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전남 보성의 벌교를 배경으로 시작해 빨치산 토벌 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까지의 5년이 시간적 배경이며, 이 시기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질곡의 시기이기도 했다. 작가 조정래는 4년간의 준비 기간과 6년간의 집필을 통해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책 10권에 담았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전시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전시실.
 

탐방 첫날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 무대인 보성군 벌교읍에서 시작됐다. 벌교꼬막정식거리에서 지역 특산음식인 꼬막을 주 메뉴로 한 점심을 먹고, 소화다리로 향했다.

벌교읍내 꼬막거리
벌교꼬막정식거리.
 

소화다리에 대해 벌교지역 해설사와 한민수 교수의 해설을 들을 수가 있었다. 소화다리의 정식명칭은 부용교로, 소화 6년(1931년)에 완공되었다고 해서 소화다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태백산맥’의 도입 부분에 나오는 무당 소화(素花; 흰 꽃)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들은 이 다리와 소화가 오버랩되며 소화의 다리라고 믿고 싶어진다. 정하섭과 무당 소화의 애틋한 사랑에 대한 독자들의 연민이 소화다리라는 상징물을 만든 것은 아닐까.그 당시 벌교에서 목포나 순천으로 가려면 이 다리를 통해서만 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콘크리트 난간이 있지만 소화 6년에 다리를 세울 때는 쇠 난간이었다고 한다.

한만수 교수의 해설과,소화다리(부용교)
한만수 교수가 소화다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이 소화다리. 
 

그러다가 일제가 쇠붙이 공출을 한다며 쇠 난간까지 뜯어갔고, 여순사건 당시에도 그 난간은 복구되지 않았다. 그렇게 일제가 뜯어가버린 난간 때문에 나중에 소화다리는 학살장으로 악용되었다고 한다. 난간이 없는 다리에 처형할 사람을 세워두고 총을 쏘면 시체들이 갯벌에 그대로 떨어지게 되니까 시체 처리가 손쉬웠던 것이다. 여순사건 때 서로 밀고 당기면서 이곳에서 학살을 자행했고 소설은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질펀하게 널렸던 곳’ 이라고 묘사를 하고 있다.

인문열차 문화 기행단 기념촬영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은 소설 ‘태백산맥’의 첫 시작 장면인 현부자네 집과 무당 소화의 집이 있는 제석산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전시관에는 1983년 집필을 시작해 6년 만에 완간된 ‘태백산맥’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과 조정래 작가가 쓴 1만6000여 장의 친필 원고 등 719점의 전시물이 공개돼 있다.

무당 소화의 집
무당 소화의 집.


다음 탐방은 자연스럽게 기념관 옆에 위치한 소화의 집과 현부자네 집으로 옮겨갔다. 소설 도입 부분에서 빨치산 정하섭이 숨어들었던 곳이 무당 소화의 집이다. ‘빨갱이’가 되어 자신의 신당(神堂)에 숨어든 마음 속 연인 정하섭을 숨겨주면서 이들의 슬픈 사랑은 시작이 된다.

현부자네 집은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으로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선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 은신처로 사용하면서 현부자와 현부자네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진다.

소설속 현부자집
소설속 현부자네 집.
 

현부자네 집 대문 앞에 서면 2층 누각을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현부자가 그 누각에 올라앉아 기생들과 함께 풍류를 즐기며 자기 소유의 중도 들판을 내려다보던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현부자네 집은 일본식과 조선식 건축양식이 기묘하게 결합된 곳으로, 겉모양은 대체로 조선식이지만 내부는 일본식이다. 양변기와 욕조가 집안에 설치돼 있으며, 집안에서 바로 목욕탕과 화장실로 갈 수 있도록 복도식 마루가 이어져 있다.

지주와 소작농의 갈등을 그린 마당극이 현부자집 마당에서 펼쳐졌다.
지주와 소작농의 갈등을 그린 마당극이 현부자네 집 마당에서 펼쳐졌다.
 

이날 이곳에서는 자원봉사 성격을 띤 벌교읍과 순천 시민들로 구성된 소설 ‘태백산맥’ 연극단의 마당극이 펼쳐졌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현부자와 소작인 간의 다툼을 아마추어 배우들이 연기했다.

소작료를 내지 못하는 소작농 돌쇠네를 닦달하며 으름장을 놓던 현부자는 소작료를 탕감해 주는 대가로 딸 이쁜이를 데려오라고 구스른다. 터무니 없는 소작료에 관객들은 야유도 보내고, 소작농 돌쇠네의 딱한 사정에 같이 공분하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작품속 중도방죽을걷는 인문 열차 기행단
작품 속 중도방죽을 걷는 인문열차 기행단.
 

이어진 기행은 중도방죽이었다. 중도방죽은 일본인 지주 중도가 돈을 대서 쌓았다고 해서 중도방죽이다. 소설 속 하판석 영감은 방죽을 쌓고 나면 그 소작논을 우선 배당한다는 조건에 솔깃해서 방죽 쌓기에 나선다. 소유권이 아니라 소작권에 불과한데도 그 어려운 방죽 쌓기를 자원할 만큼, 농사지을 수 있는 땅에 대한 열망은 간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 뒤에 그 땅은 어처구니없게도 농민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날 중도방죽에서는 직접 소설속 중도방죽 장면을 읽는 시간도 가졌다.

중도방죽에서 대사를 주고받는 인문 열차 기행단 소설 태백산맥 체험
중도방죽에서 대사를 주고받는 인문열차 탐방단.
 

이밖에도 소설 속에서 품격 있고 양심을 갖춘 대지주로 묘사된 김사용의 아들이자, 좌우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던 지식인의 전형 김범우의 집도 탐방했다. 

염상진이 쌀을 나누어준 홍교는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다.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1728년(영조 4년)에 홍교가 건립됐다고 한다. ‘벌교’라는 지명은 옛 뗏목다리(筏橋)에서 유래한 것이다. 국내 보물 홍예교 4개 가운데 가장 큰 이 다리는 보물 제304호로 지정돼 있다.  

홍교
홍교.
 

벌교 시내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거리, 남도여관도 둘러보았다. 남도여관은 ‘보성여관’이란 간판을 내걸고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다. 여관 전시실은 여관과 벌교의 역사, 소설 속의 남도여관을 엿볼 수 있도록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태백산맥 문학거리와 남도여관(우)
태백산맥 문학거리와 남도여관(우).
   

다음 날 인문열차가 찾아간 곳은 여순사건 배경지인 여수였다. 여순사건 때의 14연대 주둔지를 살펴본 뒤 찾아간 곳은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였다.

형제묘는 여순사건의 진압이 완료된 후 종산국민학교에서 색출된 125명에 대한 처형이 이루어진 뒤 시신이 3일간 불태워진 장소이다. 이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유가족들이 자리를 그대로 흙으로만 덮어 형제묘라 불리게 됐다.

여순 사건 14연대 주둔지 방문
여순사건 14연대 주둔지 방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곽종길 씨가 안내를 맡았다. 곽종길 씨는 여수 오동도 앞에서 해설을 마치면서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됐다. 좌, 우 이념의 논쟁을 떠나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 나갈 때 우리의 역사가 재조명되고 발전적으로 나갈 수 있을 것” 이라고 현지민으로서의 심정을 밝혔다.

인문열차 탐방단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동백꽃 자생지이며 해식애가 발달해 여러 기암절벽들이 존재하는 오동도를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수 오동도 방문
여수 오동도 방문.


필자 개인적으로 ‘태백산맥’을 접한지 근 30여 년은 된 것 같다. 비슷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것 같은데, ‘태백산맥’은 한 번 책을 잡으면 놓지 못하는 마성이 담긴 소설이었다.

마침 1948년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70주기가 된 시점에, 젊은 시절 소설을 접한 처음 그 감동을 가지고 벌교를 방문했다. 마치 오랫동안 객지에 나갔다 고향을 방문하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말이다.

소설의 말미에 염상구는 형 염상진의 가족이 시신 수습을 두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현장에 나타나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하면서 형 염상진의 시신을 수습한다. 그런 염상구의 모습은 빨갱이를 그렇게 미워했던 깡패 염상구가 아니었다.

형제는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총부리를 겨눴지만 형 염상진의 죽음 앞에서 형제는 화해한다. 이 장면은 서로 다른 이념 보다 같은 핏줄이 우선임을 보여준 장면이자, 휴전선으로 끊긴 태백산맥은 언젠가 다시 이어져야 한다는 작가의 믿음이다.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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