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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국민기자단인 정책기자단이 취재해 작성한 것으로, 정부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경주 월성 발굴조사 현장 및 경주 문화재 답사기

유명 역사학자 E. H. 카(Carr) 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남겼다. 역사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는 요즘.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와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인 장소는 아마 ‘경주’가 아닐까 한다. 이런 경주에서 평소 접근이 제한된 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현장을 찾았다.

지난 27~28일 경주 월성 석빙고 앞에서
지난달 27~28일 경주 월성 석빙고 앞에서 ‘빛의 궁궐, 월성’ 행사가 진행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은 천년 궁성 월성(사적 제16호)의 발굴조사 현장을 지난 10월 27일(금)부터 2일간 개방했다. 경주 월성은 신라 5대 왕인 파사왕이 서기 101년에 지은 것으로, 이후 935년까지 신라의 중심 궁성이었다. 월성을 중심으로 동궁과 월지, 분황사와 황룡사, 첨성대 등이 조성되면서 신라 왕경의 위용을 더해갔다고 하니 그 역사정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직접 본 월성 발굴조사 현장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직접 본 월성 발굴조사 현장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빛의 궁궐, 월성’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평소 접근이 제한된 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직접 보며 경주 월성의 역사를 이해하고, 신라 왕궁터의 생생한 발굴조사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다. 특히 경주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직접 만져보고 학예사들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행사의 장점이었다. 야간에는 따뜻한 차를 즐기며 신라 왕궁터에서 진행되는 역사 토크콘서트를 즐길 수 있어 유익했다.  

옛 신라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색이 변해있는 발굴지들에 표시가 돼 있다
옛 신라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색이 변해있는 발굴지들에 표시가 돼 있다.


직접 방문한 경주 월성 발굴조사 현장은 머릿속에 그리던 그대로의 위용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광활한 발굴 현장을 보니 금새라도 높은 가치를 지닌 유물이 출토될듯 했다.

또한 발굴 현장에서는 하얀색으로 표시가 된 여러 지역을 볼 수 있었는데,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시대던 사람의 손이 닿은 흙은 색이 변하게 되는데 경주 월성의 발굴 현장에서도 색이 변해 있는 곳은 따로 표기를 해 해당 부분에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신중하게 흙을 파내며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역사의 현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행사에 참여한 김지혜(39, 주부) 씨는 “아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부터 먼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답사에 지원했다.”며 “땅 속에 묻혀 있던 유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전문가 분들의 설명을 들으며 바로바로 궁금한 것을 질의 할 수 있어 금상첨화였다.”고 말했다.

월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월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경주 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둘러본 후 따로 마련된 부스에서 출토된 유물을 직접 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최문정 학예사는 “경주 월성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는 20세기 초반 일본인들이 시작했으나 일부 구역에 그쳤다. 한국 학자들에 의한 발굴조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2007년부터 2008년에 걸쳐 실시된 월성 내부 지하레이더 탐사를 통해 지표면 아래의 많은 건물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월성학술조사단은 지난 2014년 12월부터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발굴조사 작업을 시작했다. 몇 개의 지구를 나눠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목간과 신라시대 기와 등 수많은 유물을 발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성에서 개와 소 등을 가축화 했음을 알 수 있는 개의 뼈
월성에서 개와 소 등을 가축화 했음을 알 수 있는 개의 뼈.
 

유물체험부스에서는 다양한 동물의 뼈도 볼 수 있었는데 개의 머리뼈나 멧돼지의 아래턱뼈, 소의 아래턱 뼈 등 많은 동물의 뼈가 출토됐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최문정 학예사는 “경주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는 많은 동물들의 뼈가 출토되고 있다. 이는 월성에 많은 동물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개와 소의 가축화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출토 유물들을 생생히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출토 유물들을 생생히 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동물들의 뼈 외에도 ▲ 굽다리 사발 ▲ 귀면기와 ▲ 벼루 ▲ 병과 뚜껑 등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생생한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해당 유물들은 당시 신라인들의 의식주 등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들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고현지(19, 학생) 양은 “발굴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다. 출토된 유물들을 보며 긴 시간동안 문화재를 발굴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문화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을 밝혔다.

터번을 쓴 사람을 본 따 만든 토우, 당시 외국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터번을 쓴 사람을 본 따 만든 토우. 당시 외국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출토 유물은 아주 작지만 섬세하게 만들어진 ‘토우’들이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터번을 쓴 사람 모양의 토우’는 당시 월성에 거주했던 사람이 터번을 쓴 사람을 보았거나, 그와 교류하며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에도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신라시대의 유물이 천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분류되어 보관되고 있었다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분류되어 보관되고 있었다.
 

이어 발굴조사 현장 뒷편에 마련된 발굴 유적 보관현장을 방문해 분류, 보관 중인 출토 유물들을 직접 만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갈하다는 느낌이 정도로 반듯하게 쌓여있는 유물들의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는 것과 이를 직접 보고 있다는 감동이 더해져 즐거운 마음이 커졌다. 또한 이런 유물들을 발굴하고 분류하고 차후 연구 및 복원하는 과정 역시 엄청난 전문성과 인내심이 요구됨을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물을 보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한국전통문화대 및 문화재 관련 전공 학생들
유물을 보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한국전통문화대 및 문화재 관련 전공 학생들.


특히 이번 행사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SNS 고객들이 함께했다. 참여자 중에는 문화재나 동양학, 사학 등 문화재 관련 전공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나, 문화재청에서 설립한 특수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학생들은 누구보다 진지한 자세로 유물들을 관찰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류했다. 문화재에 대해 잘 모르는 참가자들이 가르침을 얻을 정도로 해박한 학생들을 보니, 우리나라 문화재 분야의 앞날이 밝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손지형(20, 학생) 씨는 “중3 졸업여행으로 경주 월성을 방문했다가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친구들의 반응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월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고자 5년째 개인적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번 기회를 통해 월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으라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물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물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취재를 갈음하고 직접 유물들을 만져봤다. 지금은 깨져버려 원형을 짐작하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신라시대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었을 유물들을 보니 새삼 묘한 감정이 일었다. 새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물들을 보니 지금의 순간 순간을 소중히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과거의 역사를 알아가는 과정 역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같은 중요함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주 월성 발굴조사 현장 답사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문화재 발굴과정을 생생한 지식으로 바꿔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신라 왕궁의 수세식 화장실이라고!?

동궁과 월지 발굴 조사 현장에서 수세식 화장실 유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수세식 화장실 유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경주 월성에서의 답사를 마치고 바로 근처의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던 곳이다.

1975년 현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처음 조사됐으며,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3만 여점의 유물 등이 출토됐다.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유독 ‘화장실’이란 단어가 자주 들렸는데, 이는 얼마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신라시대 왕궁 수세식 화장실 유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신라 왕궁 수세식 화장실 유구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신라 왕궁 수세식 화장실 유구.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발견된 신라 왕궁 수세식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 건물 내의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까지 함께 발굴돼 큰 주목을 받았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화장실 유구는 초석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 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로 그 가치가 높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변기시설만 발견되거나, 화장실 유구만 확인됐을 뿐,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그리고 오물 배수시설이 같이 발굴된 사례는 없었다. 때문에 이번 동궁과 월지에서 확인된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시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며,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분석되어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누가 보아도 변기로 쓰였을 것으로 사료되는 석조물
누가 보아도 변기로 쓰였을 것으로 사료되는 석조물.
 

사용방식은 변기에 물을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으로 추정되며,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준비된 항아리 등을 통해 물을 떠서 변기 하부로 부어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답사는 동궁과 월지에 대한 설명과 발굴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화장실 유구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뤘는데 많은 참가자들이 화장실 유구 중 특히 변기로 사용된 것이 확실한 석조물에 큰 흥미를 보였다.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본 신라 왕궁의 화장실, 기분이 묘했다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본 신라 왕궁의 화장실, 기분이 묘했다.
 

앞서 언급했듯 동궁과 월지 화장실 유구의 특징은 통일신라 최상위 계층의 화장실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선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해 만든 변기시설과 오물 제거에 ‘수세식’ 방식이 사용된 점, 변기 하부와 와물 배수시설 바닥 타일 기능의 전통을 깔아 마감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상당히 높은 계층이 사용하는 고급 화장실 시설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동궁과 월지 자체의 가치도 높아 흥미로웠지만 신라시대의 수세식 화장실 유구를 정말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던 답사였다. 동궁과 월지 발굴현장은 오는 11월 11일(토)과 18일(토) 이틀 간 다시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공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현장방문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전화 054-777-8838)로 문의하면 된다.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에도 참석했다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에도 참석했다.
 

첫날의 답사가 끝나고 경주 월성 발굴현장에서 진행된 토크콘서트에 참여했다. ‘역사 속 신라와 월성에 대한 토크콘서트’라는 이름 하에 진행된 행사는 약 2시간 가량 신라와 왕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다소 추운날씨였음에도 준비된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해 인상깊었다. 따뜻한 차와 담요를 지급받고 신라의 왕궁터에서 듣는 역사 이야기는 여행 중 동행자의 이야기를 듣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유산 답사기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바로 앞의 동궁과 월지를 방문했다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바로 앞의 동궁과 월지를 방문했다.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바로 옆의 동궁과 월지를 방문했다. 본디 안압지라고 불렸던 이 곳은 물에 비친 야경으로 유명한 명소로 경주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들리는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미 몇 번 들렸던 장소지만 매번 볼 때마다 감탄을 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경복궁 야간개장을 했을 때, 물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을 처음 봤던 감동이 매번 반복됐다.

물에 비친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
물에 비친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첫날의 일정이 끝나고 둘째날이 밝았다. 2일차에는 경주 남산 지역의 여러 문화재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첫번째로 찾은 문화재는 보물 제201호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이었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은 높이 약 10m, 둘레 약 30m의 바위 면과 주변에 새겨져 있는 여러 조각상을 말한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삼층석탑이 있어 탑곡이라 불렸다고 한다. 

다음날 경주 남산 일대의 다양한 문화재를 답사했다
다음날 경주 남산 일대의 다양한 문화재를 답사했다.
 
첫번째 답사지였던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첫 번째 답사지였던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북측 면의 구층 목탑과 칠층 목탑 사이에는 연꽃 위에 앉아 있는 석가여래가 천개와 함께 새겨져 있고, 탑 앞에는 사자 두 마리가 있다. 가장 넓은 동쪽 면의 가운데에는 여래상이 새겨져 있으며 주위로 비천상과 승려상, 금강역사사 등이 배치됐다. 남쪽 면에는 감실을 얕게 만들어 그 안에 삼존불을 새겼으며 그 옆으로는 승려상이 있다. 서쪽 면에는 능수버들과 대나무 사이로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매우 많은 불상들이 새겨진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매우 많은 불상들이 새겨진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토크콘서트에 이어 이틀째 답사를 함께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김동하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됐는데 이와 같이 여러 불상이 한 자리에 새겨진 예는 극히 드물어 보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한다. 특히 2기의 목탑은 세부적인 표현이 충실하게 나타나 있어 현존하지 않는 신라시대의 목탑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영험한 기운을 풍기던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영험한 기운을 풍기던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두 번째 문화재는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한 보물 제136호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이었다. 이 불상은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에 신라시대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있는 석불좌상이다.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대작이며,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띄고 있다.

연꽃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은 석가여래좌상으로 반쯤 감은 눈으로 이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이 자비롭게 느껴졌다.  특히 배 모양의 광배 뒷면에는 모든 질병을 구제한다는 약사여래좌상이 선각되어 있어 더욱 그 가치가 높다.

불교를 신앙으로 가진 참가자의 모습에서 경건함이 느껴진다
불교를 신앙으로 가진 참가자의 모습에서 경건함이 느껴진다.
 

완전하게 남아있는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험함을 느끼게 했다. 실제로 경주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에 위치한 석조여래좌상은 인자하고 자비로운 표정으로 답사를 온 참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교신자인 임평우 참가자는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에서 삼배를 하며 좋은 기운을 한 껏 즐기기도 했다.

소박한 느낌의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소박한 느낌의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이어 세번째 문화재 답사를 떠났다. 세번째 문화재는 보물 124호 ‘경주 남산동 동, 서 삼층석탑’이었다.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만들어진 해당 석탑들은 동탑이 높이 7.04m, 서탑이 5.85m의 규모를 지녔다. 이 탑들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두 탑이 동서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데 동탑은 3층으로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양식이다. 바닥돌 위에 돌덩이 여덟개로 어긋물리게 기단을 쌓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에 지붕돌 하나씩을 얹었다.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한 두 탑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한 두 탑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서탑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몸돌을 쌓은 일반적인 형태로 윗기단의 몸체에 팔부신중을 돋을새김한 것이 독특하다. 팔부신중은 신라 중대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날씨가 다소 흐렸지만 학예사와 함께 하는 답사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마지막 답사지를 향해 가는 참가자들
마지막 답사지를 향해 가는 참가자들.
 

마지막 답사지를 향해 가며 참가자들이 서로 상당히 친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엄선되어 모이다 보니 공감대도 성격도 비슷해 1박2일의 기간동안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향한 문화재는 보물 제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었다. 다소 외진 느낌이 드는 곳에 놓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선방사터 부근에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1923년에 모아서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온화하고 자비로운 모습의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온화하고 자비로운 모습의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중앙의 본존불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인데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다문 입, 통통한 뺨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존불을 기준으로 왼편은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띄고 있다. 오른쪽 연꽃 위에 선 대세지보살상은 두 어깨에서 발등까지 구슬과 꽃으로 엮은 목걸이를 드리우고 있다. 이 삼존불은 웃음 짓는 얼굴 표정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느껴졌는데 전체적인 조각양식으로 보면 제작시기는 삼국말기인 7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에 대한 지적만족감이 한 껏 높아졌던 답사였다
문화재에 대한 지적만족감이 한껏 높아졌던 답사였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끝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종료됐다. 경주 월성 발굴 현장, 동궁과 월지 발굴 현장, 토크콘서트, 경주 남산 문화대 답사에 이르기까지 1박 2일동안 정말 알차고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동행들과 친분을 쌓으며 학예사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며 경주를 거닐 수 있어 어느때보다 가장 유익했던 경주 여행이었다. 

이런 알찬 답사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이런 알찬 답사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ㄴ‘한국의 임어당이 나와면 좋겠다. 그는 한 다리는 중국을, 한 다리는 서양을 밟고 우주를 향해 글을 썼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나와서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

이런 알찬 답사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의 임어당, 그 이상이 나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의 특징을 알릴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남혁진
정책기자단|남혁진apollon_nhj@hanmai.net
대한민국 정책현장을 누비는 열정 가득한 정책기자입니다.
다양한 정부부처 기자단 경험과 장관상 5회 수상의 경험을 살려
더욱 생생하고 정확한 정책기사를 작성하겠습니다.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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